<본문>
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설교>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향한 서신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23,24절)로 끝납니다. 에베소 교회에 평안과 은혜가 있기를 원하는 바울의 기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있을지어다’는 말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없기 때문에 있을지어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지 은혜가 있는 상태인데 ‘있을지어다’라고 한다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옷 입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은혜가 없었던 것일까요? 에베소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면 은혜가 있다 없다는 말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무엇 때문에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만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바울의 말은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길로 나아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속한 신자는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를 받아서 현재보다 좀 더 나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은혜는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주지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은혜는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 자신의 뜻과 의지에 의해 결정되고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자는 한 순간도 은혜 없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육신의 삶에 국한 된 말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인해 죄인 됨을 알게 되고 내가 부인되는 길로 이끌려가는 모든 것이 은혜의 사건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이끌어 죄인의 자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고백하게 되는 자리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오직 은혜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22절을 보면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보내어 에베소 교회에 알리고자 했던 바울의 사정은 무엇일까요? 당시 바울은 옥에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신이 옥에 갇힌 형편임을 알리고 싶어 했다는 뜻일까요? 사도인 자신이 옥에 갇혀있다는 사정을 알리는 것이 에베소 교회에 유익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사도로 인한 걱정만 안겨주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바울이 알리고자 한 사정은 옥에 갇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게 되는 그 사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그 은혜가 자신을 이끌어 간 사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은혜로 인한 사정을 알림으로 에베소 교회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이 있게 하실 것임을 믿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람이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옥에 갇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될 뿐입니다. 은혜를 자신의 기대에 맞추어 생각해도 한탄이 나올 뿐입니다. 현실은 항상 자신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품고 은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자기 세계를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안다면 그 앎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증거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도하게 되고, 헌금하게 되고, 전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 산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의에 대해 살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뜻이고 따라서 자신을 증거하고자 하는 습성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는 신자는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행함으로 스스로를 증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증거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지 자신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 대해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에서도 주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고난에서 건짐 받지 못하고 고난이 계속되다가 죽임을 당한다 해도 그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말하기 위해서 옥에 갇힌 자기 사정을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현대 교인들이 은혜에 대해 어떤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그 방향성보다는 은혜 받은 자신에게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잘못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현재보다 믿음이 더 나아지고 그렇게 되고 자신의 믿음이 인정받으며 좀 더 가치 있는 존재 되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탐심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사정은 옥에 갇힌 것도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사정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입니까? 육신의 시각에서 보면 돈이 풍족하지 못하고 일이 풀리지 않는 것들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러한 자기 사정을 봐주시기를 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의 시각에서 본다면 신자의 사정은 은혜가 있음으로 복음을 위해 살게 하시고 내가 부인되는 자리로 이끌려 가는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사정입니다. 육신의 환경이나 형편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고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엡 1:4-6절을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자는 은혜가 있는 자입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저 베풀어진 은총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가 되는 것이 은혜 있는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신 그 뜻을 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자신을 뜻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위해 은혜를 구하는 것이야 말로 은혜 주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신자로 하여금 어떤 형편에서도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난에서도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고난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은혜는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며 세상에서의 성공도 아닙니다. 은혜는 내 죄를 아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음으로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고난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부요와 편안함을 우리는 삶입니까? 아니면 남은 인생을 소유가 작든 많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기적일까요? 하루아침에 부자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적은 탐심으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소원이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런 소원이 자리한다는 것은 돈이나 권력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신자는 매일이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