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6 14:59

(43강) 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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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0:6-11

대하 10:6-11>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0061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원로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이 백성에게 어떻게 대답하도록 권고하겠느냐 하니

7.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왕은 원로들이 가르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시고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9.이르되 너희는 이 백성에게 어떻게 대답하도록 권고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10.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

 

<설교 요약>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죄의 존재로 태어납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을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고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다고 하신 말씀대로 인간에게 땅에서 산다는 것은 곧 죄의 형벌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현실임을 인정한다면 어떤 형편에서도 자기의 구원과 평안, 행복에 대한 요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형벌이 자기의 상태로 확정되었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선하고 의롭게 생활하는데도 죄로 인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불합리한 처사라며 반발합니다. ‘행함이 다른데도 모두가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인가?’라며 반발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행함을 기준으로 복 줄 자에게 복을 주고 벌을 줄 자에게 벌을 주는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고에 맞는 합리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뜻은 도외시하면서 자기 행복과 평안을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이 저주받은 땅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땅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나라를 대표하여 보여주는 것이 애굽입니다.

 

 

따라서 애굽적 사고방식의 모든 나라가 애굽이며 이방 나라라는 점에서 르호보암에게 솔로몬이 자신들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면 왕을 섬기겠다고 한 온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드러납니다. 자신들을 여호와께 속한 나라, 이스라엘로 말하면서도 추구하고 드러내는 것은 자기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는 애굽의 정신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구약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지신들의 평안을 보장해주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을 자신이 통치하는 자기 나라로 인식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원로와 젊은 신하에게 묻는 것입니다.

 

 

원로들의 의견은 왕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로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르호보암이 그들의 말을 버리고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젊은 신하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 솔로몬 왕보다 더 강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에서는 우리는 원로와 젊은 신하들이 말한 두 의견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어느 쪽의 말이 옳으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의견대로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멍에를 가볍게 하겠다고 했다면 이스라엘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신하들의 말은 왕에게 독재를 부추기는 지혜롭지 못한 조언이라는 것으로 생각이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이처럼 두 의견을 두고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이 곧 이스라엘을 여호와께 속한 나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원로와 젊은 신하들에게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이스라엘을 자신이 통치하는 자기 나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이기에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백성들은 무조건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요구를 애초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멍에를 가볍게 해주면 왕을 섬기겠다고 하는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는 르호보암 왕과, 왕에게 조언하는 원로들과 젊은 신하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 죄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백성들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는 원로들일까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 속한 나라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죄와 관계있습니다. 모두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같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나라로 인식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좋은 방법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이러한 인간이 보여주는 것은 악함이 전부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의 구별은 백성을 위하는 선한 통치, 아니면 강력한 왕권에 의한 번성에 있지 않습니다. 이방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악함을 아는 것이 이스라엘다움이며 말씀이 다스린다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악한 자로 규정할 때 하나님이 성전을 세우라고 하신 이유가 이스라엘의 번성과 복이 아니라 용서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는 죄가 발각되는 현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선함을 믿음의 증거로 가르치면서 죄는 극복하고 이겨야 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행함을 기뻐하시고 악한 행함에 대해서는 징벌하신다고 말합니다. 땅에서 산다는 것이 곧 죄의 형벌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인간을 에덴에서 추방된 버림받은 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악하다라는 말 대신에 나는 믿음으로 산다라는 말만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유가 결국 자기를 위해서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악함으로 규정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악한 자로 드러날 때 하나님의 언약이 빛으로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 속한 나라에 세우신 원칙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끝까지 자기 의를 통해서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악함이 됩니다.

 

 

 

죄의 형벌이 모든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자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고, 받은 그것을 자랑하는 성도만의 자랑이 있습니다. 성도와 이방인은 이렇게 다릅니다. 이방인은 받기 위해 신을 믿지만, 성도는 이미 받았고 받은 것의 가치를 알았기에 받기 위해 주를 찾지 않습니다. 죄의 자리에서 나 같은 자에게 주로부터 주어진 것의 가치로 인한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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