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6 16:08

(46강) 싸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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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1:1-4

대하 11:1-4>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10104.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와 베냐민 족속을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모든 이스라엘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설교 요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시각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일로 보이겠지만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간섭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나타내시고 가르치시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을 인간의 시각으로 보고 해석할 때, 우리는 결국 인간의 상식과 윤리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인간의 시각은 세상에서 경험하고 배운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교회의 언어가 세상의 소리와 같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고 하자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긴다고 해도 돌아올 유익이 없다는 생각에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이 보낸 역꾼의 감독 하도람을 이스라엘이 돌로 쳐 죽인 사건을 통해서 신변의 위험을 느꼈는지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으로 도망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자신을 왕으로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돌아간 이스라엘이 괘씸했는지 군사 십팔만 명을 모아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 명분은 분열된 나라를 다시 하나로 회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열된 나라를 회복하겠다는 것은 정당한 명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교회의 분열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분열은 사탄의 전략이며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만약 교회가 분열되었을 때 다시 하나 되기 위해 힘쓰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라를 회복하겠다는 뜻으로 이스라엘과 싸우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분이 정당하다 해도 어쨌든 같은 형제인데 싸움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나라를 회복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형제와의 싸움을 싫어하신다는 뜻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하나로 회복하는 것보다 형제와 싸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요?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가 전한 말씀을 듣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순종으로 해석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순종을 믿음의 행위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르호보암은 믿음의 행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르호보암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봐야 할까요?

 

 

지금까지 말한 것이 성경을 인간의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분열된 나라를 다시 하나로 회복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보이는 명분, 그래도 형제와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윤리적 판단,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 믿음, 이것이 인간의 시각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언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가 세상이 말하고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람들이 믿음으로 착각하는 인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일은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된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가 싸우고 분열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분열이라는 잘못된 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분열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면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도, 르호보암도 아닌 하나님의 뜻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은 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인 죄가 드러나는 것에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착한 행실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빈틈없이 박혀 있는 죄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편안한 삶의 환경을 기대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통치 방식으로 다리겠다고 고집합니다. 자신이 왕이고 이스라엘은 나의 나라라는 인식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로 드러난 것이 분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스라엘을 분열하게 한 것이 아니라 죄가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형제와 싸우지 말라고 하신 것도 하나님은 싸움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르호보암과 그 무리가 자기를 위해 싸우는 자임을 나타내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을 자기를 위해 싸우는 자로 인식하는 것이지 싸우러 가는 길에서 되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싸움을 멈추고 되돌아갔다고 해서 싸움이 없을까요? 인간의 세계에서 싸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자기 이름을 위해 살고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자기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 높여지는 그곳에 주의 의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말씀이 함께 하여 죄가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 쉬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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