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0 14:02

(48강) 제사장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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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1:13-17

대하 11:13-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1131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14.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들과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15.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16.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17.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설교 요약>

세상에는 교회가 많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도 많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삽니다. 하나님은 현실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확인할 수 없는 신으로 여기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믿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의 선택과 결정은 자기의 뜻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깝고 중요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도 내 가족, 내 자식, 내 재산입니다. 이것이 인간이기에 비록 기독교인으로 자처한다 해도 하나님이 없이 산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놓치는 것은 인간의 신앙과 성경 해석이 왜곡되었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자신의 상식적 생각에 동의 되는 것이면 보편적 진리로 굳게 믿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 신앙이 허황하고 헛되며 어리석은 생각에 빠진 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기 현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바울은 인간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말합니다(1:28). 교회를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인을 향한 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아마 부정하고 싶을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있다고 항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도라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수 없다라는 인간의 종교적 상식이 앞서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믿음이 믿음 아닌 것으로 부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간 됨은 자기중심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믿음을 마음에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한 믿음의 모습으로 여겨지겠지만 인간의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행함과 실천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조차 싫어하는 구원될 수 없는 저주받은 인간으로 드러나는 가운데서 제사장으로 오셔서 온전한 제사를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누리게 된 은혜의 혜택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살고 있는 나를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을 해임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레위 사람은 다른 자손들처럼 약속의 땅을 분배받아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지 않고 각 지파 속에 흩어져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지파 속에서 제사장 일을 하였던 것이 레위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레위 사람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대신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을 세웁니다. 그렇게 해임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그들이 있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로 돌아오게 되면서 여로보암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여로보암이 제사장을 해임한 것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제사를 지킬 수 없는 상태에서 레위 사람의 존재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그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임이라는 방법으로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임함으로써 제사장 직분에 따른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다른 제사장을 세웁니다. 그럴 바에야 이왕 존재하는 레위 사람 제사장을 그대로 두고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해 일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세운 레위 사람이 자기가 만든 우상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어쨌든 남쪽 유다를 향해 우리에게는 레위 사람 제사장이 있다라고 큰소리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레위 사람을 해임하고 자기가 만든 우상을 위한 제사장을 친히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19:6절에 보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 나라는 제사장이 중심인 나라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속성은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아니고 제사장이 중심이라는 점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 나라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제사장을 필요로 해야 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나라를 알지 못하고 제사장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지 못한 여로보암과 같은 왕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제사장이 존재하면 자신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를 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 제사장을 자기에게 두기를 싫어하여 해임하고 친히 자신의 제사장을 세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의 권력을 제사장이 아닌 자신에게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에게서 드러나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만나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제사장이 없는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존재 의미를 알지 못한 여로보암은 자기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친히 제사장을 세워서 제사하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교회가 제사장 제도는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섬기면 되는 줄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해임하고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로 전락합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언약으로 오시고 죽음으로써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의 일을 도와주고 뜻을 이뤄줄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이 자기를 위해 만든 우상과 같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우리에 의해 매일 버림받고 계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가 예수님을 해임합니다. 현실에서 언약의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버린 예수 앞에서 자기 공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고 십자가의 용서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깨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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