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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2:13-16

대하 12:13-16>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2131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14.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15.르호보암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16.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TJFRY DYDIR>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과연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를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명보다 생존에 관심을 두며 삶의 수고와 고통에서 자신을 구해줄 신적 존재를 찾고 의지하려는 존재인데 이것을 간과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절은 예수님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계시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핵심은 자기 백성’, ‘그들의 죄’, 그리고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세상에서 보내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서 예수가 누구시며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오심은 그들의 구원과 더불어 생존 문제까지 해결하여 평안한 삶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기 백성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예수님을 자신의 생존 문제 해결자가 아닌 생명의 주로 알고 믿는 자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곧 그들도 백성 아닌 자들과 함께 같은 죄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기 백성에 해당하는 성도라 해도 죄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기에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구원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대하는 시각이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는 르호보암 어머니의 이름이 나아마이며, 암몬 여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왜 굳이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 특히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암몬은 이스라엘 밖의 이방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르호보암이 비록 솔로몬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이방 여인이라면 혈통의 정통성을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됩니다.

 

 

이는 단지 르호보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로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이 분열된 이후 남쪽 유다의 초대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가 이방 여인이라는 사실은 그의 후손들 곧 유다의 왕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을 자신 있게 주장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는 르호보암의 이름이 등장하며 그의 후손들의 이름도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왕으로 행한 행적이나 혈통의 정통성은 완전히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것으로 하나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족보로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세계입니다.

 

 

15절을 보면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자기 백성들에게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너희 신들이 여기 있다라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고도 벧엘과 단에서 제사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부정하는 행위이기에 르호보암의 입장에서는 이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들의 전쟁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신앙과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갈등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예수님의 시대에서도 계속되었고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 장소에 대해 묻는 장면(4:20)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그리심산 사이의 예배 장소에 대한 것은 단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과 갈등은 단지 고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의 교회와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당함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자신이 옳고 바르다는 확신 속에, ‘성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믿는 이들이 서로의 믿음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가르려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 족보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상기시킵니다. 그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완전하거나 흠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정당함을 주장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구속의 역사 속에 포함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자신이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당함을 주장하기보다, 용서의 은총을 기억하고 주께 감사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임을 복음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해도 그 은혜를 끝까지 간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마음을 나 스스로 굳게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14절에서 언급된 르호보암의 악행과도 연결됩니다. 성경은 그가 악을 행하였다고만 말하지만, 그 악은 단지 행위로 드러나는 범죄가 아니라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못하므로 비롯된 모든 것입니다. 6절에서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고백한 겸비한 마음을 붙들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해 성경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존재라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주를 믿는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외면한 채, 자신의 정당함과 의로움을 세우고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비록 죄인임을 알고 고백한다고 해도, 인간 안에 깊이 뿌리내린 자기 의와 교만한 본성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힘이 아니기에 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 같은 자를 쉬지 않고 도우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주의 일하심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피로 죄에서 구원하신 자기 백성으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암몬 여인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아비가 마귀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으로 주의 공로만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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