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1 14:21

(54강) 아비야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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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3:10-12

대하 13:10-12>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31012.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들이 수종 들어

11.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잔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설교 요약>

지금의 기독교가 경계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신앙을 은혜 중심으로 강조하면서도 실제 내용은 인간의 행위와 자기 의()의 흐름을 따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실천적 주체를 자신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살고, 기도하고, 예배에 참여하며, 죄를 멀리하고 바른 삶을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흐르는 매우 보편적인 신앙 이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할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착각이며, 심각한 자기중심적 오류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비야가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10)라고 말한 것도, 오늘날 우리에게 나타나는 착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비야는 자신들과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근거로, 그들 가운데는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수종 드는 레위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고 분향하며 여호와의 계명을 지킨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신으로 섬기게 하며, 자의적으로 가짜 제사장을 세운 여로보암은 여호와를 배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비야는 이것을 근거로 삼아 하나님은 여호와를 배반하지 않은 자신들과 함께하시고 머리가 되셔서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치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니 감히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는 것이 그의 강력한 외침이자 경고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읽는 우리 역시 아비야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쉽게 그의 말에 동조할 것입니다. 이는 현대인의 신앙이 아비야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아비야가 어떤 착각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인 역시 같은 착각 속에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아비야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신다고 말하는 근거는 한마디로 자기 의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함께 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여로보암의 행위는 여호와의 계명을 저버리고 그분을 배반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비야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아비야와 유다에게 함께 하신다면, 계명을 지켰다고 말한 그들의 행위는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지킨 것으로 인정이 되어야 하고 또한 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신다면 그 근거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로 시작하여 결국 죽음으로 마치는 인간은 본질상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하고, 그 행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 인정받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랑할만한 신앙을 실천하고 그것을 선한 행위로 내세운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에 불과합니다(64:6).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의로 여기시고 함께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비방한 것은, 자신들의 계명 실천이 의가 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할 때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실천입니다. 실천을 근거로 하여 먼저 자신을 믿음의 자리에 둠으로써 타인의 잘못이나 문제, 곧 비신앙적인 모습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의 우열 경쟁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는지, 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인지를 가리려는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에서 아비야가 보여준 비판은 지금의 우리가 자기 행위를 근거로 하여 타인을 판단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야는 자신과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지만, 정작 그 말 자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6:5). 또 사람이 모두 더럽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14:2-3). 그런데 자신을 여호와를 배반하지 않은 믿음의 사람으로 주장한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의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자기 기준으로 믿고 해석하며,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것이기에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자기 길로 가는 배반입니다. 그래서 아비야의 오류는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알았던 행위 속에 숨겨진 자기 의라는 악함을 간파하지 못하므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현대 기독교의 실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비야는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계명을 본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명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벌을 받는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악함과 무능함을 드러내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인을 부르시기 위해 아들이신 예수를 보내시고 아들의 피로 죄를 사하시고 아들의 의안에 있게 되는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비야는 이러한 계명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계명을 지켰다고 자부하며 그것을 자기 의로 삼고 여로보암을 정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가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계명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계명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자기 의에 빠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비야의 말은 하나님과 계명을 오해한 인간의 교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성도는 죄로 인한 절망에 빠져서 의지할 것은 예수님의 의밖에 없음을 매일 같이 실감하며 살게 됩니다. 자기 행함에 매이지 않고 행함이 짐이 되지 않으며 예수님의 의안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 성령이 동행하시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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