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9 17:05

(58강) 행위의 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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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5:1-7

대하 15: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501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2.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3.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4.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5.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6.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7.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설교 요약>

본문은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친히 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 아사랴가 자기 뜻이나 결단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에 따라 그를 사용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매라는 내용에는 크게 관심 두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의례적인 문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나아가 성경을 가볍게 대하는 잘못된 태도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은 창 1:2절의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처음 등장합니다. 여기서 운행하시니라라는 표현이 활동하며 일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이미 활동하고 계셨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기록된 그 시점은 아직 창조가 시작되기 전, 곧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사역을 인간을 대상으로 한 활동, 예를 들어 우리의 믿음을 돕고, 능력을 주시며, 신앙을 성장시키는 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해 온 우리의 오류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기 전부터, 땅에는 이미 하늘에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쫓겨난 사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12:7-9). 즉 사탄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창조 전의 당의 상태라면 하나님의 영의 활동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악한 영인 사탄과의 대립된 관계에서 풀어가야 합니다. 여기에 인간은 사탄의 활동과 하나님의 영의 역사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과 영광되심을 이 땅에 드러내고 증거할 자로 창조된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아사랴는 유다 왕 아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2절의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라는 말씀도 사람들에게 신앙의 상식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단순한 말씀을 전하는 데 왜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했을까요? 이것은 비록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말처럼 보인다 해도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의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고 이해되는 말씀이라고 해서 그것을 성경을 아는 것으로 간주하면 안 됩니다.

 

 

3절에서 묘사된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 그들은 실상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당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과 다를 바 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참 신이 없었다"라는 말은, 그들이 믿고 섬긴 존재가 참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 그들은 이름만 하나님을 말했을 뿐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그들에게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단순히 제사장 계열인 레위인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율법을 버리고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섬기는 가운데, 그러한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하나님께로 이끌어 갈 참된 제사장도, 율법에 대한 바른 가르침도 없었던 영적 무지의 현실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단순히 그들에게 국한된 어리석음이나 무지로 치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우리가 다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 상태와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배후에는 사탄의 권세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 하나님이 참된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바른 신앙에 있다고 믿는 착각과 자기기만의 상태가 바로 사탄에게 사로잡힌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인간은 애당초 사탄의 권세를 극복할 능력이 없는 자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권세에 붙들려 지배당하는 현실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환난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환난을 단순한 환경적 고통이나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상태로 인식하게 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힘이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탄의 지배를 벗어날 능력이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게 되는 실제적인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3절에서 말하는 이스라엘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무능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는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자발적 결단이나 의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인간의 행위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무능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가 찾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영의 일하심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찾게 하신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함께하거나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도 없거니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평안과 풍요, 문제 해결이라는 현실적인 목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됨을 간과한 믿음은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에 붙들린 인간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악함을 악함으로 드러내어 알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심령에는 요란함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심적 평안은 사실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7)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능한 자인 우리를 하나님의 의를 찾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서 그 의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그 마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일하심으로 인한 성도의 행위이며 이 행위에 상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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