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6 14:42

(59강) 만나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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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5:10-15

대하 15:10-15>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51015.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11.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12.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14.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15.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설교 요약>

오늘 본문에는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이 나에게 익숙한 이야기이거나 알고 있는 신앙 체계와 부합된다고 느껴질 때, 그 내용을 깊이 묵상해보지 않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성경이 전달하는 참된 의미를 찾지 않고 간과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본문도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쉬운 내용으로 알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사 왕과 유다의 행위는 현대 교회가 강조하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과 신앙적 열정으로 이해되고, 이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일은 그들의 신앙 열정에 대한 반응으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아사는 구스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거둔 후,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리고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합니다.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될 때 감사헌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친숙한 신앙 행동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은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연한 결단과 각오로 비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피리와 나팔을 불며 여호와께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는 것이 본문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쉽게 유다의 신앙 열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내용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익숙하게 들린다 해도 막상 그 의미를 알고자 하면 의외로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구절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12절과 비슷한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라는 말씀을 보면서 어렵다기보다는 잘 아는 내용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 있는 자를 만나 주신다는 것이 교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진지하게 묵상하며 하나하나의 표현을 성경적으로 짚어 본다면, 단순한 교훈이나 감동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를 난감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유다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했는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태도, 또는 상태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모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에게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은실질적인 경험이 있다면, 본문 속 유다 백성의 결단과 언약이 단지 옛날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면 우리는 쉽게 라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런 행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본문의 신앙적 고백과 결단을 실제로 공감하기보다는, 단지 우리 생각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알고 복음을 안다고 하는 우리의 오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의 내용만으로는 그 당시의 상황을 뚜렷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하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면서도, 또한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말씀드리는 것은 익숙하다=안다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고 듣다 보면 머리에 기억이 되면서 익숙해지는 구절이 있겠지만, 그 익숙함이 곧 이해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내용이든 이것은 내가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생각은 멈출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뜻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4:29 절을 보면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마음과 뜻을 다할 수 있는가?’라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고 만날 수 있는가?’라는 장소의 문제입니다. 인간 사이의 만남의 약속에도 장소는 필수적입니다. 아닌 말로 날과 시간을 약속하지 않았다고 해도 약속된 장소에서 계속 기다리면 됩니다. 하지만 장소를 약속하지 않았거나, 약속했음에도 잘못 알고 있다면 그 만남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장소를 찾아 헤매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만남의 자리, 즉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임재하시겠다고 하신 언약의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것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입니다. 앞에서 말한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라고 말한 거기서가 성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약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언약을 이루신 십자가가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따라서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그 또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시고 거기에 임재하셔서 오라고 하심으로 만나 주시는 것이지 이스라엘처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맹세까지 했다고 해서 찾아지고 만나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유다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다의 행위에 초점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만나 주셨다는 것은, 만남에 해당하지 않는 인간을 만나 주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게 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한 만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4)라는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난으로 인간의 믿음이 쓸모없음을 알게 하시고 아무 힘이 없는 무능한 상태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믿음의 상태를 무시하시고 아들의 피로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게 하심으로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만나 주신 성도에게 이 평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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