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7 14:09

(65강) 점점 강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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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7:10-19

대하 17:10-19>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7101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11.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

12.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13.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

14.군사의 수효가 그들의 족속대로 이러하니라 유다에 속한 천부장 중에는 아드나가 으뜸이 되어 큰 용사 삼십만 명을 거느렸고

15.그 다음은 지휘관 여호하난이니 이십팔만 명을 거느렸고

16.그 다음은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그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큰 용사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17.베냐민에 속한 자 중에 큰 용사 엘리아다는 활과 방패를 잡은 자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18.그 다음은 여호사밧이라 싸움을 준비한 자 십팔만 명을 거느렸으니

19.이는 다 왕을 모시는 자요 이 외에 또 온 유다 견고한 성읍들에 왕이 군사를 두었더라

 

<설교 요약>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도구화하여 자기 영광과 권세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외적인 성장을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신 증표로 알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부패한 성품에 의해서 나타나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희생에 기초한 언약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이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켜지지 않는다면 바른 해석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언약의 중심이 하나님의 희생과 은혜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강대하게 하시는 일은 결국 그 희생과 은혜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강성하게 된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언약이 아닌 외적 성장을 은혜의 본질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얻기 위한 실천적 조건을 강대해진 인간의 행위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행위에 무게를 두고 본받는 것을 신앙으로 강조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셔서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신 것으로 시작하여 점점 강대하게 된 내용입니다. 군사의 수효도 아버지 아사 왕 때 구스 군대를 마주했던 오십팔만 명보다 두 배가 늘어난 백십육만 명입니다.

 

 

성경을 언약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강대하게 하신 사건 역시 언약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점은 우리 시각에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사밧이 받은 복과 은혜는 분명히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희생과 은혜에 기초한 언약적 맥락은 쉽게 포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사밧의 강대함이 그의 신실한 믿음과 행위에 대한 보상인지, 혹은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의도에 따른 것인지를 신중히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님의 언약에는 희생과 은혜만이 아니라 인간의 부정할 수 없고 회피할 수도 없는 본질인 죄인 됨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인 됨에서 희생과 은혜가 드러나고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언약의 완성인 십자가는 단지 그리스도의 용서만 아니라 인간의 죄인 됨도 함께 포함된 피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인간은 죄와 저주라는 자신의 본질은 외면한 채, 자기에게 구원이 되는 주님의 용서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믿음으로 오인하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약에 인간의 죄인 됨이 포함된 이유는 언약이 단순히 인간의 구원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희생을 통해 나타난 깊은 사랑과 은혜를 계시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언약의 참된 의미와 본질을 바르게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번성하게 하시고, 나의 위치를 강대하게 세워주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된 사실 자체를 더 깊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심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강대함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다시 말해서 강대함을 기뻐하고, 그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믿음의 보람으로 삼는 것이 사탄에게 지배받고 이용당하는 인간의 악한 심성이며, 이러한 심성의 인간으로는 십자가에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증거한다라거나 내가 주의 일을 한다라는 말을 한다면 그 또한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도구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을 점점 강대하게 하신 이야기는 죄인 된 우리의 악한 심성을 드러내고 구원될 수 없는 자로 확정하면서 주님의 용서와 은혜를 증거한다는 점에서 언약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인간의 악함이 노출되게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다윗의 첫걸음이 의미하는 것처럼, 믿음의 시작도 마침도 그리고 성취까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정비함으로써 문제없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좋은 상태의 믿음이어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인정됨으로써 여호사밧처럼 강대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조건적 행위와 연결하는 잘못된 신앙이며, 바울이 저주받을 자로 단호하게 선포한 다른 복음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자기 것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강대하게 하시는 것을 바라는 이유도, 실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자신의 영역과 소유가 강대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이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높이시고 강대하게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으로 반응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나를 제외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일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믿음과 나의 믿음, 타인의 행위와 나의 행위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한다면 애초에 나의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도 하나님에게서 주어진 은총이라는 점에서 내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허상, 신기루일 뿐입니다. 신기루를 현실로 알고 거짓된 현실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죽음의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유일한 해석이며 답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강대하게 해주실까?’라는 생각이 악마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도 십자가 앞에서는 십자가를 훼방하고 멸시하는 사탄으로 규정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고 자부하는 온 유대인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는 다수로 증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죽은 자인 자신에게 베풀어진 주의 용서와 사랑만 자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에 의한 성도의 행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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