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8:13-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81317.mp4
<본문>
13.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14.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하는지라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그들이 왕의 손에 넘긴 바 되리이다 하니
15.왕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니
16.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는지라
17.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나쁜 일로만 예언할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더라
<설교 요약>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 가치로 증거합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그리스도와 본질적으로 동등하거나 같은 수준에서 논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가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피조물인 인간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어떤 인간이든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지 독자적 가치를 지니고 그리스도를 상대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지키고 향상하는 데 관심을 두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읽고 듣는 이유와 목적도 자기 보존과 자기 가치 확립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라는 복음의 선언은, 그리스도의 피가 절대적 가치임을 증거하는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은 나’라는 식으로 예수를 믿은 인간에게 가치를 두는 왜곡된 해석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의 의도입니다.
이처럼 사탄에게 장악된 사고와 마음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의 언어와 신앙고백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며, 그것을 보존·향상하는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처럼 성경을 왜곡한 거짓말을 들으면서도 '아멘' 하고 받아들이고 ‘은혜받았다’라며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입니다.
세상에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절대적 가치로 증거하는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이 있는 반면에 이 말씀을 인간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내용으로 왜곡한 인간의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의 속임수,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은 듣기를 싫어하고 거부하며 거짓말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현실은 거짓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서 멸망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미가야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 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즉 선지자는 자신의 사적 판단이나 주관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호응이나 지지를 얻기 위해 개인적 생각과 판단을 가미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시하는 자는 거짓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정체는 오직 참된 선지자의 등장을 통해 드러납니다. 참된 선지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청중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계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을 왜곡 없이 전달함으로써 그의 진정성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분별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합왕이 불러 모은 사백 명의 선지자들이 ‘우리가 한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근거로 드러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인간의 말을 분별하는 문제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탐욕을 위한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빙자하여 떠드는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선지자를 자기 욕망을 정당화해 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항상 불리하고 부정적인 예언을 전한 미가야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질문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그가 불러 모은 사백 명의 선지자들은 한목소리로 아합에게 ‘여호와께서 길르앗 라못을 왕의 손에 넘기셨으니 올라가 싸우라’라는 아합에게 좋은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은 겉으로는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겠지만 그저 종교적 언어를 사용했을 뿐 실제로는 아합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으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이른바 ‘긍정적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간의 기대와 욕망을 반영한 긍정적 선언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욕망하고 추구하는 세계를 부정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고자 하시는 세계, 곧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차원에서 현재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그 안에서 자신의 뜻과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종교의 세계는 언제나 말씀으로 심판과 부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야가 아합 앞에서 사백 명의 선지자들과 같은 말을 합니다(14절). 하지만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아합이 듣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되돌려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풍자적 조롱입니다. 아합 역시 미가야가 어떤 선지자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에 담긴 조롱을 눈치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노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꾸짖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아합이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긍정적인 말만 듣고자 하면서도, 그러한 자신을 감추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된 진실한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말씀에 대한 갈망을 가장하면서도, 실상은 자기 욕망을 확인해 주는 말을 좋아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모순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 교회를 찾는 이들 가운데서도 발견되는 모순적 모습입니다. 인간은 본성상 자기 존재를 긍정해 주고 유리한 전망을 제시하는 거짓된 예언을 원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참되고 진실한 말씀을 듣고자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미가야는 이러한 상황을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진 이스라엘”(16절)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참된 주인을 상실한 채 각자가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믿고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불편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거짓말이 제공하는 거짓된 평안을 평안으로 알고 누리는 자기기만의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고 하겠지만 실상은 거짓말을 기뻐하고 감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진실된 말씀을 전하려고 오신 참된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우리의 거짓됨이 폭로되는 매일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