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8:18-22>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81822.mp4
<본문>
18.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19.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0.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21.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설교 요약>
인간은 죄의 본성으로 인해 그 존재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러한 인간 됨은 자기 훈련이나 변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는 관계로 개선될 어떠한 가능성도 없습니다. 인간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행할 뿐이며, 이러한 본질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자기 고백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근거로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이미 해소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이 모순처럼 보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로 행한다’라는 말 또한 믿음을 무시하는 불합리한 주장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하나님의 원수로 행한다’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믿는 자라면 곧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이 성경 전체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기 의를 정당화하려는 인간적 해석이자 변명에 해당합니다.
즉, 육에 속한 존재가 자신의 믿음과 열심만으로 하나님과 화해된 영의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말이며 결국 거짓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육의 존재인 인간을 마치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인 것처럼 위장하는 거짓말에 미혹되어 사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생각이 이미 거짓에게 점령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십자가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백성답게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인간적 방식에 철저히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죄 된 본성과 언제나 십자가를 대적하는 실패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기에 복음의 진리를 어리석은 말이라 여기며 거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미가야가 아합에게 자신이 목격한 하늘의 광경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좌우에 모셔 섰으며, 하나님께서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하시고 누가 그를 꾀어 올라가게 할 것인지 말씀하신 내용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미가야의 말을 실제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하늘의 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여러분께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이 내가 본 하늘의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예, 맞습니다’라며 순순히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나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가야는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좌우에 모셔 선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과 보좌의 형상, 하늘의 만군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하늘의 만군의 본질적 중요성은 그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습니다. 그것이 곧 심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일은 육에 속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늘의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는 증언을 부인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 영이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게 하겠다고 나서며, 그 방법은 아합의 모든 선지자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너는 꾀겠고 또한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라고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거짓의 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아합에게 예언한 선지자들의 말을 살펴보면 됩니다. 그들의 말이 곧 거짓말하는 영에 의해 미혹된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아합에게 한결같이 “올라가 싸우면 승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과 함께하시며 그를 도와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아합은 이를 자신에게 좋은 말씀으로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실상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말씀을 듣고 믿는다고 자부하는 기독교인의 현실입니다. 교회 또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는 거짓의 세계로 전락 되었음에도 거짓을 거짓으로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한 무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합이 우리보다 더 악한 자였기에 길르앗 라못에서 죽이기로 작정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아합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합이 이스라엘을 우상으로 가득하게 한 일로 인해 악하다고 평가되지만, 실상 우리 자신도 이미 우상으로 충만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말씀의 세계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나의 세계를 꿈꾸며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상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자의 말은 참된 말씀인 반면, 다른 선지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하는 영, 즉 사탄에게 미혹된 거짓말입니다. 한쪽은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는 소위 인간에게 부정적인 말을 전하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이 아합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긍정적인’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무엇이 거짓말인지 분명히 분별할 수 있으며, 참된 말씀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인간이 하나님의 작정을 무시하고 자기 뜻에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언제나 실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원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주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자리에 있는 것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