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8:23-2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82327.mp4
<본문>
23.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
24.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 하더라
25.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미가야를 잡아 시장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6.왕이 이같이 말하기를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 하셨나이다 하니
27.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설교 요약>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은 자로써, 그 말씀을 다르게 고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참된 선지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대중의 뜻을 따르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만을 충실히 전달합니다. 즉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로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말씀을 받지 않았다면, 참된 계시가 없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지어내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게 됩니다. 이들 선지자의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서 호감을 사게 되고, 백성들은 그를 참된 선지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선지자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과 충돌하며, 듣기에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보이며, 그로 인해 참된 선지자가 오히려 배척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백성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참된 선지자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자기 말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하나님의 영을 받아 말씀을 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내용이 서로 상충할 때, 백성들은 참과 거짓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선지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만일 미가야의 말이 참이라면 시드기야 자신은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오히려 거짓말하는 영에게 사로잡혀 거짓을 말한 선지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선지자로서의 자기 권위와 정당성과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지키려고 미가야에게 분노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미가야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 모인 하늘 군대를 보았다고 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미가야 개인의 경험이지 모든 이가 직접 목격한 사건은 아닙니다.
따라서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당신의 말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라는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요구이고 물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이 참된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사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내면의 태도가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진위를 검토하려는 겉모습 뒤에, 말슴으로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고, 오히려 표적을 요구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의 말씀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표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독사의 자식으로 지칭하고 심판 날에 심문받을 자로 책망한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고 반응입니다.
미가야가 전한 말씀에는 아합의 죽음이 예언되어 있고, 시드기야의 말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도우심으로 얻게 되는 승리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길르앗 라못을 자신의 소유로 삼고자 하는 아합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히 시드기야의 말입니다.
반면에 미가야가 전한 말씀은 아합의 욕망을 철저히 무너뜨립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이신다는 말씀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와 항상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분”으로만 이해하려는, 곧 사탄이 주입한 왜곡된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저주와 심판이 있는 죄의 자리로 끌어내어 죽음의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 있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고 자기 희망을 위해 주를 찾는다면 본능적으로 이 복음을 싫어하고 배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며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대해 미가야는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신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성취하신다는 선언입니다. 만일 아합이 실제로 평안히 돌아온다면 미가야의 예언은 거짓이 되고, 그가 본 하늘의 환상 또한 거짓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진실은 죽이실 자를 반드시 죽이심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아합의 권력에 굴복하여 아합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했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열심으로 해석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에게 점령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말씀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없으며, 다만 성도에게 오신 성령이 일하고 계실 뿐입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성도는 죽음의 존재인 자신을 사탄이 자신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승리하게 하신다는 말로 내가 중심이 된 나를 위한 믿음의 세계를 꿈꾸게 한 모든 것이 사탄의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믿음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가 일하시고 주가 이루심을 증거하는 복음의 세계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이것이 인정되는 그가 곧 성령이 있는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