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13:42

(72강) 예후의 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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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9:1-3

대하 19:1-3>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9010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설교 요약>

자신을 성도로 자처하면서도 성도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성도를 단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 혹은 선한 양심과 바른 행실을 지닌 사람 정도로 막연히 생각한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의 존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현대 교회의 심각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聖徒)는 인간의 도덕적 성품이나 종교적 열심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구별하신 자이며,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선언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에 근거하여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성도 됨에 인간의 역할과 책임은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를 신앙적이고 선한 사람정도로 이해한다면 성도 되게 하는 근본 원인을 인간에게 둘 것이고, 결국 인간의 선함에서 성도의 정체성을 찾을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곧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두는 잘못된 신앙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할 일을 생각하며, 보이는 것을 믿음의 행위로 오해하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용서된 거룩한 자로 구별된 자이기 때문에, 그의 행실을 떠나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됨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판단 되어야 하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입니다.

 

 

이처럼 성도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성도를 인간적인 기준이나 육신의 시각으로 판단한다면 그의 도덕적 상태나 행위의 선악에 따라 성도의 여부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행위가 신앙적일 경우에는 성도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신앙적이지 않은 행위가 있는 경우에도 과연 성도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본문은 아합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던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의 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난주 내용대로 아합은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하심을 따라 죽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도우신 이유를 그 사람의 믿음에 둡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거나 행실이 악할 때는 하나님께서 징벌로 갚으셔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왔을 때, 선견자 예후가 나아와 그를 맞으며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라고 책망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을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만든 아합왕과 혼인으로 인척 관계를 맺고, 또 그와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전쟁에 참여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하나님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력을 든든히 하기 위한 의도의 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한 여호사밧의 잘못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과연 예후의 책망을 피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책망을 듣고 뉘우쳐 악한 행실을 고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단순히 악한 자를 멀리하고 사귀지 않으면 된다라는 수준에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에서는 악한 자와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구분하여 멀리하고, 오직 선한 자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만 선택하여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능적 성향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가 악한가를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유익한가 아닌가를 따져서 관계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예후의 책망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예후의 말은 우리에게 한 가지 의문을 던집니다. 예후는 여호사밧을 책망하고 이어서 왕에게도 선한 일이 있으니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없애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음이라”(대하 19:3)고 말하며 그를 높입니다.

 

 

이것은 여호사밧에게 악한 일과 선한 일이 함께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본성,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7:18)라는 진리와 상충 되는 것입니다. 즉 죄만 나오는 여호사밧에게 어떻게 선한 일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망과 칭찬이 함께 등장하는 예후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순히 성도로서 선한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잘못을 범하면 책망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라고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예후가 책망한 말을 보면 여호와께로부터 진노가 임한다라고 선언하면서도, 선한 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복이나 보상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만일 진노가 악한 행위의 결과라면, 선한 일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복이 있는 것이 타당한데 그 어떤 결과도 제시되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아세라 목상을 없애고 하나님을 찾은 것이 여호사밧이 자기 믿음으로 행한 선한 일이었다면, 아합과 연합할 때 그 믿음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러한 의문이 해소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개입에 있습니다. 악을 행하여 책망을 피할 수 없고 진노가 임하는 것이 마땅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선한 일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에게 선한 일이 있다는 것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진노가 임할 자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여 일하시는 증거로 활용됩니다. 바로 이들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라 할지라도 그가 보여주는 것은 진노가 임할 죄가 전부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우상을 섬기는 악한 자로 규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의를 찾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개입한 흔적으로서의 선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의 선함을 살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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