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9 14:52

(74강) 송사와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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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19:8-11

대하 19:8-11>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19081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10.어떤 성읍에 사는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

11.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설교 요약>

전쟁터에서 평안히 돌아온 여호사밧 왕은 선견자 예후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후, 유다 온 나라의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고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공의로 판단하게 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라고 명령함으로써 재판이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행위임을 선포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왕의 정치적 책무의 시각에서 본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유다 왕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백성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이 당연한 행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판관이 백성의 송사를 바르게 처리한다면 그 혜택은 백성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어떤 성읍에 사는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10)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이 재판관을 찾아와 송사를 제기한다는 것은, 그가 타인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억울한 상황에 처한 자임을 의미합니다. ‘혹 피를 흘림이나라는 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생명과 신체에 관한 심각한 침해를 입었거나, 율법이나 계명에 대한 서로 다른 적용과 해석에 따른 신앙적 갈등으로 인한 송사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누구든 재판관에게 와서 송사한다는 것은 자신을 피해자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법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송사에서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은 사람의 외모나 신분을 따라 판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법과 공의의 기준에 따라 판결하는 것입니다. 참된 재판은 인간적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억울한 자에게는 공의를 세우고, 불의를 행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판관이 이렇게 판결하는 것을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라는 여호사밧의 명령을 실천하는 바른 자세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거짓 고소나 무고한 송사에 대한 경고가 아닙니다. ‘어떤 송사든지라는 말에는 피해를 본 자의 정당한 송사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즉 정의를 구하는 송사조차도 여호와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사밧의 말에서 인간의 기준으로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송사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는 신앙적 원리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먼저 송사는 인간의 삶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그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들이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며, 여기에는 인간관계 속의 오해와 불신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든 송사를 제기한다면 그 목적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경우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의지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인으로 자처하고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는 신앙고백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나의 힘과 노력으로 이룬 나의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 자신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송사는 과연 정당한 것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나는 억울하다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 억울함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도 정당한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송사를 자기 권리로 여기고 소유를 지키거나 되찾기 위해 송사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죄가 됨을 경고하라는 것이 여호사밧의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이 송사에 대해서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 6:1)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은 성도는 송사를 세상 법정이 아니라 성도, 즉 교회 앞에서 해야 한다라는 송사의 절차나 규칙을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불의한 자들, 곧 세상의 법과 기준을 따르는 자들에게 송사를 가져간다면, 그 결과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가르는 세상 판결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불의한 자들 앞에 자기 억울함을 호소하여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한 참된 결과는, 믿음을 말하면서도 믿음에서 떠나있는 자기 현실에 대해서는 어둠일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 바울의 지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근거하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신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초점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두는 것입니다. 여호사밧도 전쟁터의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 돌아왔을 때,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자기중심적 해석으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중심의 신앙이 선견자 예후의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는 책망으로 철저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가 살게 했음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라라고 명령한 참된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책망을 경험함으로써 모든 송사에서 자신의 옳음만 주장하고 자기 공로나 의로움을 앞세우는 것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자리에 임할 것은 진노가 전부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는 불의한 자들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이 송사의 문제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루며 세상의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에게 마땅히 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비록 현재의 삶이 평안하고 소유가 타인보다 넉넉하다 해도 그것을 자신의 믿음 덕분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우리의 생명과 구원의 근거가 됨을 무시하는 죄가 됩니다.

 

 

반면에 인간이 죄 없는 자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책망하시면서 죄로 인해 죽은 인간의 참된 실상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성도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용서와 피의 공로를 새롭게 인식하고 날마다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경고와 책망으로 역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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