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6 14:31

(78강) 이상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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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0:20-23

대하 20:20-23>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02023.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0.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설교 요약>

교회 생활을 신앙생활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때 드러나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교회 안에서의 활동을 믿음의 행함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행함에 눈이 가려지면 아무리 성경을 본다고 해도 자신의 죄인 됨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되는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받지 못할 죄인으로 폭로하면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게 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 죄에 대한 깊은 자각입니다.

 

 

성도에게는 그의 교회 생활이 어떠하든 그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공로와 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믿음과 구원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피가 새로운 질서가 되어, 그 질서 안에서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로 존재하게 된 그들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십자가를 아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문제는 비록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요구를 극복하고 초월하여 생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적 필요와 현재의 형편에 마음을 빼앗긴 채, 정작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피에는 무관심한 삶을 보이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문제 해결과 현재의 평안에 마음이 붙들려 있기에 결국 십자가를 잊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삶의 방식은 십자가 없이 사는 이방인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십자가를 생각하고 감사한다고 해도, 다시 세상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십자가는 잊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생활이 반복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자신이 문제 있는 존재이며 나아가 십자가를 훼방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가 십자가를 알고 자랑하게 되는 일은 자신의 의지나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답은 성도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마음이 십자가로 향하며 그리스도의 은총에 감사하도록 성도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성도라고 해서 자신의 믿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성도를 다스리시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성도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보게 하는 사건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전쟁도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이방 나라를 여호사밧에게 보내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에게 이방 군대를 보내신 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단지 전쟁의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했습니다. 여호사밧 역시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자신들은 싸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러한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았다면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일하심과 이루심을 신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성도라 할지라도 이러한 믿음의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 군대를 보내서 유다의 문제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싸울 것이 없는 전쟁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싸워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구원 아래 있는 자임을 알게 하시고, 그 구원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의 평안이나 구원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증거된 하나님의 사랑이 찬송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사건은 우리의 문제를 보게 하시고,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하여 십자가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구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이 드고아 들로 나아갈 때, 여호사밧이 노래하는 자들을 택해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며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한 것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드고아 들로 나가는 것은 16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방 군대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만약 자신들이 실제로 싸워야 하는 전쟁이라 생각했다면 군대를 앞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가 노래하는 자들 뒤에서 행진했다는 것은, 그들이 싸울 필요가 없는 자, 곧 이미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가진 군대로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나아갔음을 보여 줍니다.

 

 

22절을 보면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이방 군대를 치게 하심으로 그들이 패하였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복병이 이스라엘 군대가 아니라 유다를 치러 온 이방 군대 자신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서로를 치게 하심으로 패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방 군대가 유다를 치는 목적은 유다 땅을 자기들의 소유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방 군대가 하나님이 두신 복병이었다면,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자신의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사는 인간의 속성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복병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복병은 숨어서 적을 기다리다가 공격하는 역할을 하기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두신 복병이라면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복병의 존재를 눈치챌 수 없습니다. 숨어있는 복병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속성이라는 복병이 내 안에 숨어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다만 교회 생활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믿음을 자랑하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내 안에 숨어있는 복병으로 하여금 나를 치게 하심으로 내가 곧 심판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하나님의 원수를 아들의 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찬송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는 자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기는 자로 사는 찬송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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