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14:55

(80강) 산당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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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0:31-34

대하 20:31-34>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03134.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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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1.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32.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33.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34.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행적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올랐더라

 

<설교 요약>

모든 종교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도록 신이 도와준다는 기대를 제시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의 신은 인간이 인간의 정신적 위안과 만족을 위해 만들어 낸 우상으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우상을 만들게 되면 그 우상을 섬기는 방식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인간을 기쁘게 하고 만족을 주어 그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함이었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낸 신적 이미지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인간이 희망하는 것을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섬기고자 하는 것이 결국 성경에 없는 인간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위해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은 자로 나타나야 했습니다. 이것이 곧 사탄이 등장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사건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죄는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함께 계속 존재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보편성은 죄로 인해 죽은 자라는 사실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왜 죽은 자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때문에 성경은 인간의 죄와 죽음의 상태를 다양한 사건 속에 담아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악한 것으로 규정하시고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취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정작 자신의 방식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를 위해 자기 방식으로 신을 섬기는 세상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그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이 평가만 보아도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그가 산당만은 철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산당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족속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든, 즉 가나안의 종교 문화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산당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받은 여호사밧이 왜 산당만은 철거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산당까지 철저히 철거해야 비로소 정직하게 행한 참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산당을 남겨둔 사실 자체가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마음을 정했다라는 표현은 이전부터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한 적이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 왔다면 그러한 섬김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인간의 섬김은 거짓이며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섬김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산당은 자기를 위한 개인적 방식의 신앙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가나안 문화였고 동시에 세상의 종교적 풍습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산당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만약 그곳에서 이방 우상을 두고 하나님처럼 섬겼다면, 여호사밧이 과연 산당을 남겨두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상 문제에 관해서는 어머니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할 정도로 철저했던 아사조차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대하 15:17).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유다 백성이 산당에서 섬긴 대상은 이방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당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그대로 남겨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은 산당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당에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성전이 유일합니다. 성전에서는 개인적인 방식의 신앙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죽은 자이며, 오직 제물이 흘린 피로 인해 죄가 용서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방식이며, 이것이 곧 성전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산당에서 자신의 정성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했다면, 그 행위를 스스로 선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는 마음을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두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자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개인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정성과 열심이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그것을 선한 믿음으로 여기고 남겨두는 현대 교회의 모습이 곧 산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산당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만 존재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인간의 기쁨이 자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치 있는 것으로 높이기보다 자기 신앙에 가치를 두고 높이는 일에 힘씁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자랑하는 십자가는 사라지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또 다른 십자가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교회 현실이 곧 산당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이 내용을 전한다면 사람들은 자기 신앙이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산당 신앙이었음을 인정하고 내려놓으려 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산당만은 남겨 둔 것처럼 자기 믿음에 미련을 두고 선한 것으로 주장할 것입니다. 마음을 자신에게 두기로 정하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도 좋고 산당도 좋다는 식의 믿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베푸신 것만 용납하실 뿐 인간의 것은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마음을 자신에게 두기로 정하고 삽니다. 인간이 자기에게 마음을 두기로 정하고 선악과를 먹은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은 한 번도 자신게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해도 가인의 제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론은 산당 만은 포기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은혜로 인해 산 자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로 세상에 남겨진 그들이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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