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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0:35-37

대하 20:35-3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0353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5.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36.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37.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설교 요약>

여호사밧은 왕이 된 후 초기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다를 다스립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대하 20:32)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방인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풍습으로부터 시작된 산당만은 그냥 두었고, 나아가 심히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고 서로 연합하여 다시스로 보낼 배를 만듭니다. 하지만 아하시야와의 교제를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배들을 부서지게 해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여호사밧의 행적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말을 들을 정도라면, 그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해 바르고 견고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고 연합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여호사밧의 신앙적 행보가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여호사밧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라면 악을 행하는 자와의 교제와 연합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임을 사전에 분별하고 그러한 선택을 피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직하게 행하였다라는 것은 죄의 유혹을 항상 이겨 내며 죄를 범하지 않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러한 이해는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행함에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바르고 정직하다는 칭찬을 수백 번 듣는다 해도 인간을 다스리는 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결국 행함이 아무리 정직해도 인간은 죄 가운데 있는 죽은 자로 언제나 죄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이는 중대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웃시야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강성하게 하셨을 때 마음이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는 범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행함에 대한 평가와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이 같은 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여호사밧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며 서로 연합하여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한 것은, 다시스가 무역이 활발한 항구도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려는 경제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지리적 여건상 해상 무역에 적합하지 않았으나, 북이스라엘은 지중해 연안 항구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즉 유다의 발전에 아하시야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교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개인의 삶에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자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악한 자를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그들과는 어떤 교제나 연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기준을 문자적으로 적용할 경우, 현실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러한 의미로 해석할 내용이 아닙니다.

 

 

여호사밧과 아하시야는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려는 계획에 있어서 서로 뜻이 일치하였습니다. 이는 곧 무역을 통해 각자의 나라의 부를 증대시키고자 하는 목적에 마음이 하나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사밧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임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유다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하기보다 자신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자기 나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악을 행하는 이방인의 사고방식임을 알지 못했기에 아하시야가 행하는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함께 악을 행하는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4-15)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바울이 말한 믿지 않는 자를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불신자와는 사업을 같이 하거나 결혼하는 것을 금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교회를 다니고 신앙적 행함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십자가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다면, 그 역시 믿지 않는 자로 규정한다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고 싶어 하고, 여러 실천을 통해 신앙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반면 믿는 자는 자신의 행함으로 드러나는 것은 죄가 전부라는 것을 알기에, 자기를 드러내려는 시도 자체를 악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 대신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진 자리에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의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증거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자신이 자랑할 만한 행위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게 하는 본질적인 다름이기 때문에 두 부류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과 같이 함께할 수 없는 의와 불법이며, 사귈 수 없는 빛과 어둠이며, 조화될 수 없는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관계라는 점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을 말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겉으로는 교회에 속해 있으나, 생각이나 사고방식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고 벨리알과 조화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과 바울의 말에 의해 악을 행하는 악한 자로 지적받는 것이 옳습니다.

 

 

믿음을 말하면서도 자신을 지키고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 헛된 믿음임을 책망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참된 믿음으로 오신 주의 믿음이 자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날마다 새롭게 창조되는 성도입니다.

 

 

 

여호사밧처럼 나의 유익을 위해 세상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가 오시고 함께 하시고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의가 우리의 보화가 되고 감사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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