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 14:07

(82강) 여호람의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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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1:1-7

대하 21: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101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3.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4.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5.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6.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7.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설교 요약>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이후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바뀌었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에 의해 계몽된 인간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사탄에 의해 계몽되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사탄에게 계몽되었다면 세상이 분노할 만한 노골적인 악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주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열심히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계몽된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합니다. 아무리 지신을 성경 전문가로 자처한다 해도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는 성경에 대해 무지한 문외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증거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선악과를 도적질한 인간이 더 이상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기 이야기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유대인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영생에 관심을 두고 성경을 연구한다면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다는, 자신을 위한 자기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로 보고 듣기 때문에 진리를 진리로 분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을 자기 이야기로 읽는 한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한 예수님의 원수라는 사실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자기를 위한 자기중심적 존재로 변화되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사랑하시고 돕는다는 사탄의 이야기에 철저히 계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예수님의 이야기로 읽게 될 때,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은 부인되고, 대신 예수님을 못 박고 십자가의 은혜를 멸시하며 원수로서 활동하고 있는 자기 실상을 깨닫게 됩니다. 즉 성경을 예수님의 이야기로 볼 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으로 인해 드러난 인간의 실상을 선명히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사밧의 장자 여호람은 왕이 되어 권세를 얻은 후, 자기 동생 여섯 명과 이스라엘의 방백 몇 사람을 칼로 죽이는 악을 행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로 읽는 방식 그대로 이 내용을 본다면 여호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비록 입으로는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다고 해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행함이 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이라 말하면서도, 여호람과 같은 악을 행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람과 같은 악행이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악을 찾아내어 회개하고 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사탄에게 계몽된 인간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할 때 마지막에 남겨지고 증거되기를 바라는 것은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실천적 행함에 의한 자기 의가 됩니다.

 

 

6절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는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종교적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규정하는 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으로 보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한 것이며, 그 악의 시작은 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에게서 비롯됩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않고도 제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을 해임하고 자기가 만든 우상을 위해 제사장을 세웁니다(대하 11:14-15).

 

 

하나님이 레위 사람을 성전의 제사장으로 세우신 목적은 단순히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물의 희생과 피가 있는 제사를 통하여, 죄로 인한 인간의 죽음과 그 죄를 용서하시고 덮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즉 이스라엘도 이방인과 다를 바 없이 죽음이 마땅한 죄의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집에 주어진 언약이며, 이 언약을 완성하실 구세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것이 곧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경입니다.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을 제사장에서 해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제사를 통해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일하며 자기 목적을 충족시켜 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람이 동생들을 죽인 사건은 왕이라는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제사한 자기 행함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당했다고 생각된 반감 때문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악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 곧 나 자신이 자리합니다. 나를 위해 행하고 나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는 악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의 구조 안에서 모든 인간은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죄를 비교하거나 누가 더 낫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심판이 마땅한 인간에게 베풀어진 용서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증거하게 하시는 주의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다윗의 집도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의 가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신 것은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등불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도의 안에는 예수님이 꺼지지 않는 등불로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살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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