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1:8-10>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10810.mp4
<본문>
8.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
9.여호람이 지휘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지휘관들을 쳤더라
10.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지배 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설교 요약>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지으신 사람을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많았는데,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하시며,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해 가장 널리 퍼진 일반적인 이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선악과는 그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선택지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통해 인간의 선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뜻은 사라지고 인간의 생각만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설명이라는 점에서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 잘못된 이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인간과 선악과만 있었다면 아무 일이 없었을 에덴동산에 뱀이 등장합니다. 뱀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로 여자를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뱀과 인간의 만남을 막지 않으셨고, 그 결과로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은 자가 됩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사건에서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조성하시고 허용하신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두신 일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말씀을 주신 것과, 사탄이 인간을 만나는 것을 허용하신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것을 통해서 죄로 인해 죽은 자 된 인간을 버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목적으로 하고, 인간을 버리시는 그런 하나님은 신을 찾는 인간의 목적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죽은 자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불순종의 결과이며, 그러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도우시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 된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살리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어 만들어진 하나님이며 그것이 곧 우상이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대 교회의 심각성입니다.
뱀이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한 것은, 죽이는 하나님을 가리고 살리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믿게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고 살게 하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에 해당합니다. 교회를 떠나거나 기독교에서 다른 종교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믿음은, 이미 하나님을 버렸음을 드러내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있는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을 따르고 믿는 자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인의 일괄적인 착각이며, 이러한 착각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여주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은 여호람 왕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아합의 집과 같이 행함으로써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가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모든 일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 계시하신 뜻과 의미는 무시하고 성전과 무관하게 자기를 위한 제사장을 세워 어디서든 제사를 드리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되며, 하나님도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종교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여호와를 버린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람이 여호와를 버린 것에 대한 조치로 에돔과 립나가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여호람을 배반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여호와를 버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유다의 왕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더 무거운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에돔은 이방 족속으로 다윗의 전쟁 때 이스라엘에 종속되었습니다. 그 에돔이 여호람 때까지 계속 유다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것은, 유다를 강한 나라로 인식했고 유다에 종속되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돔의 배반은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유다에 있는 것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든 이스라엘이든,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유익을 기준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립나는 원래 가나안 족속의 성읍이었으나 여호수아의 정복으로 이스라엘에 편입되어 유다 지파의 땅으로 분배되었고, 이후 레위 지파가 거할 성으로 지정됩니다. 즉 립나는 유다에 속한 레위 지파 성읍입니다. 이러한 립나가 여호람을 배반했다는 것은 여호와를 버린 유다 왕에게 속한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돔과 립나의 배반은 단순히 인간적 신뢰를 저버린 정치적 반란이 아니라, 여호람이 여호와를 버림으로써 유다가 유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음을 드러내는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가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이방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이므로 에돔이 유다에 종속될 이유도, 립나가 유다 왕의 통치를 정당하게 받아들일 이유도 사라진다는 점에서 유다가 유다로서 지녀야 할 정당성을 잃어버렸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정당성은 곧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정당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정당성은 인간의 종교적 실천과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 제사 행위가 있는 여호람을 여호와를 버렸다고 말한 것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중요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어 죽은 자가 된 인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창 3:15). 이는 죽음과 저주 가운데서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실현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대상은 언제나 저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무조건 생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죽이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은 바로 그 저주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아들의 피로 죄를 사하시고, 죄인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그것입니다. 성도는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받은 자이며,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유일한 가치는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긍휼과 사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