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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2:1-9

대하 22:1-9>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20109.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2.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3.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4.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5.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6.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7.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

8.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9.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이르기를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설교 요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드러나는 악행은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범죄나 악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악행이 반복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악행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계속되었고, 그 흐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죄의 반복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세상이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죄를 안다고 말하면서 장차 있을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대비하여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죄의 실상과 죄에 대한 인간의 전적 무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무지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죄가 오늘을 살아가고 우리 자신에게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은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무지한 인간으로는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행함이 자신과 하나님의 연결 고리가 되는 것으로 알고 힘쓸 뿐, 정작 자기 안에는 하나님과의 화목과 하나 됨을 이루게 하는 주의 피가 없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증거되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가치는 철저히 부인되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무시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시야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장자 상속의 전통에 따르면 왕위에 오를 수 없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한 여호람을 큰 재앙으로 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블레셋과 아라비아 군대의 침공으로 그의 모든 형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 결과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하시야는 본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없었던 왕위에 오르게 된 그 내막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면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해야 했고,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일에 마음을 두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하시야는 하나님이 재앙으로 치신 아버지 여호람의 죄가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깊이 살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3, 4절을 보면 아하시야 역시 여호람을 따라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형제들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자신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한 아하시야는 당연히 아합 집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보시기에는 그것이 아합의 집과 동일하게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을 단순히 그의 개인적인 무능이나 무지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만일 이것이 아하시야 개인의 문제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아하시야처럼 하지 말자라는 교훈으로 본문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경의 역사적 사건에서 도덕적 교훈을 도출하는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5절을 보면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서 요람이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처를 입고 치료를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가자, 아하시야 역시 이스르엘로 내려가 요람을 찾아갑니다.

 

 

이는 병문안을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동시에 요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는 일에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요람을 찾아간 일로 인해 결국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여 아람과의 전쟁에 나갔던 예후가 돌아올 때, 아하시야는 요람과 함께 예후를 맞이합니다. 이때 예후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기름 부으신 상태였으며(왕상 19:16), 반역을 계획하고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하시야는 요람과 함께 있다가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에서 우리가 잘하는 것은 이스르엘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요람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라는 식의 후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미래의 일을 알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건의 결과를 인간의 선택 차원에서만 해석하는 태도에 머무는 것으로 의미 없는 후회라는 것입니다.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뜻에 합당한 길을 스스로 분별하여 선택하며 행할 수 있는 안목이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죄의 길로 가고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분별할 능력조차 없이 죄의 길로 나아갑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죄의 길을 오히려 믿음의 길로 오해하며 그 길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말하는 현실의 실상입니다.

 

 

사람들은 아합 집의 길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하며 살아갑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교회를 잘 다니며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러한 모든 상태를 분명히 죄로 규정합니다. 또한 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 종교적 지혜로 만들어 낸 그 어떤 행함도 믿음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람의 죄와 아하시야의 죄를 오늘의 우리 역시 반복하여 행하고 있다는 분명한 현실 속에서, 죄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라는 믿음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명목으로 시도하는 모든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 나의 이익을 따지는 죄성에 의한 것입니다. 언제나 내가 보기에 좋은 길로 가는 것이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을 반복하여 행하는 것일 뿐, 우리 힘으로 이루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 주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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