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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강) 아달랴의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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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2:10-12

대하 22:10-12>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21012.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11.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12.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설교 요약>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정되어 복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오히려 자기의 복을 목적 삼아 하나님을 찾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죄를 죄로 알고 분별할 능력을 상실하였기에, 죄의 길을 가면서도 믿음의 길에 있다고 확신하는 잘못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믿음의 길에 서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자랑할 만한 좋은 것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기대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악과를 통해서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본심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일하실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온전히 하나님의 의를 향해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도록 일하신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죄를 통해 증거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죄가 드러나도록 인생을 만드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인생에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을 마주할 때, 하나님을 믿어왔던 세월이 헛되고 무익하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믿음을 자처하면서도 그 인도하심과 사랑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힘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악행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이러한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본문은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던 중에 여호람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아달랴를 피해 육 년 동안 숨겨놓았다는 내용도 함께 합니다.

 

 

이러한 아달랴의 악행은 사실 유다 나라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와 친척을 죽이고, 심지어 자기 아들까지 제거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처럼 아달랴의 악행과 같은 사건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됐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역사를 권력을 향한 욕망의 결과로 판단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달랴의 악행 역시 권력을 얻고자 한 욕망으로 해석하고 그 욕망을 죄로 규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아달랴와 같은 악행을 접할 때, 평소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하던 사람들조차도 자신은 그와 같은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적어도 자신은 아달랴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죄를 분별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자신의 믿음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현실입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한 것은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의 일입니다. 만일 이 사건을 아달랴가 스스로 왕이 되어 유다를 통치하고자 했던 권력 욕망이라는 죄의 결과로만 본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왜 아하시야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일을 실행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전쟁에 나갔을 때나, 이스르엘로 내려가 요람을 방문했을 때 유다에는 왕이 부재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왕자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차지하기에 충분히 좋은 기회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아들이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아들이 죽은 후에야 유다 집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아달랴의 행위를 단순히 권력욕의 결과로만 해석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아하시야의 죽음에 어떤 동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에 앞서 먼저 남편 여호람의 최후를 생각해 보면, 그는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창자에 들어 결국 창자가 빠져나오는 비참한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 병든 기간이 이 년이었음을 고려하면 아달랴는 남편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이 년 동안 지켜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처럼 남편과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연이어 경험한 아달랴의 하나님을 향한 심정이 어땠을지를 아달랴의 처지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달랴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를 꾀어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하게 했다는 것은, 그가 아합의 집에서 배운 신앙 방식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아합의 집의 신앙 방식은, 성전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시한 채 산당에서 드리는 제사만으로도 신앙이 인정되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제사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알았고, 결국 자신의 실천적 믿음을 통해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합의 집의 길로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악을 행하는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인이 믿고 행하는 신앙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자기 편이시며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고 형통하게 하신다는 신앙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아달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3)라고 평가하고 있음을 반드시 주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거룩한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이 참되다고 하는 유다의 왕이었던 남편과 아들이 비참하게 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짐작이 되는 것은 성전 신앙의 무용론입니다. 성경은 악을 행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말한다 해도 정작 죄를 알지 못하는 아달랴의 눈에는 남편도 아들도 징벌을 받아야 할 악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대하 21:7절에 보면 여호람이 악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세우시고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등불은 악을 행한 다윗의 집을 멸하지 않고 용서하신다는 언약입니다. 하지만 등불을 자신의 가문이나 인생을 세상에서 빛나게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아달랴의 상황에서는 등불을 주겠다는 언약도 필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인간적 분노가 유다 왕국의 씨를 진멸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유다를 언약이 없이 자신이 통치하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는 죄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달랴의 악행은 아달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언약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를 무시하는 현대인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등불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어둠에 있음을 아는 자들에게만 빛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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