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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강) 언약을 세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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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3:1-7

대하 23:1-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3010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2.그들이 유다를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

3.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4.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너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곧 안식일에 당번인 자들의 삼분의 일은 문을 지키고

5.삼분의 일은 왕궁에 있고 삼분의 일은 기초문에 있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뜰에 있을지라

6.제사장들과 수종 드는 레위 사람들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모든 백성은 여호와께 지켜야 할 바를 지킬지며

7.레위 사람들은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성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에 경호할지니라 하니

 

<설교 요약>

본문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다섯 백부장과 함께 언약을 세우고, 유다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소집하여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호야다와 온 회중이 단순히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함께 언약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유다에 언약을 세운다는 표현은, 아달랴가 스스로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던 기간 동안 유다는 언약의 정신이 무너지고 언약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가의 씨를 모두 진멸하려고 한 것이, 다윗의 집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중요성도 무시한 행동이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 결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길을 따랐던 것처럼,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린 육 년의 기간 또한 언약이 없고 언약을 알지 못한 아합 집의 방식 그대로 하나님을 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언약이 무너진 유다의 실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야다는 단순히 유다 가문의 자식을 왕으로 세워 다윗의 자손이 왕위를 이어가게 함으로써 정통성이라는 명분이 살아있는 유다로 만들기 위해 아달랴를 축출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왕과 함께 언약을 세움으로써 언약이 함께하는 유다, 즉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유다를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를 유다 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혈통이나 민족성이 아니라 언약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울의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2:28,29).

 

 

이처럼 바울은 육신의 할례를 하나님의 백성 된 증표로 삼고 스스로를 자랑하던 유대인들을 유대인이 아니라고 부정해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됨은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내적 상태, 즉 마음의 할례로 드러난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할례가 곧 십자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성도를 성도로 규정하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무너진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이 곧 자기 의이며, 이것이 아합 집 신앙의 핵심적 특징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와 판단을 기준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신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아합 집의 신앙을 이방적 신앙으로 규정하고 악을 행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이방을 구별하는 기준은 혈통이나 정치 체제가 아니라 언약의 유무입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곳에서 제사한다고 해도 성전으로 드러나는 언약의 정신이 상실되었다면 성전도 제사도 무의미합니다. 결국 언약이 없는 이방인의 종교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약이 세워지지 않은 유다는비록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 나라와 다르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여호야다가 왕과 함께 언약을 세우는 것은 유다를 다시 언약의 공동체로 규정하는 결정적 행위,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본질을 찾는 근본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참된 유대인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언약을 세우는 것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무너지고 언약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리들이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라 자기 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꼬임에 빠져서 아합 집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것을 정당한 신앙으로 착각하는 아하시야의 오류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왕과 언약을 세운 사건은 그의 온 정신이 언약으로 향해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 예수를 말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언약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면, 언약이 중요하며 그 언약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이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우리는 세상의 일에 집착하고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현재 상태를 따지지 않으시고 언약대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세상 일을 외면하지 못하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 안에 있는 것이며, 이들이 증거하는 것은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언약으로 오셔서 구원의 능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점에서 언약 안과 언약 밖의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다를 다스리고 있는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일에 적격자는 본래 군인입니다. 권력자를 대항해서 몰아내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그 제물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주도하는 것은 유다라는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피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힘으로 존재하고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왕은 언약이 없는 이방 나라의 왕과 다르게 죄 없는 제물의 피가 자신들의 죄를 덮고 구원하는 생명의 능력임을 믿는 믿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피의 거룩함을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 언약으로 세워지는 유다 왕입니다.

 

 

6절을 보면 제사장들과 수종 드는 레위 사람들을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거룩하다고 한 레위 사람들이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다른 사람이 성전에 들어오면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 경호하라는 것도 하나님께 선택 받은 거룩한 왕으로 세움을 받고, 백성들은 왕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예수님이 우리의 왕으로 오셔서 언약을 이루신 덕분에 구원될 수 없는 악한 존재인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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