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1 14:34

(88강) 왕으로 삼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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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3:8-11

대하 23:8-11>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3081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레위 사람들과 모든 유다 사람들이 제사장 여호야다가 명령한 모든 것을 준행하여 각기 수하에 안식일에 당번인 자와 안식일에 비번인 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비번인 자들을 보내지 아니함이더라

9.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전 안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고

10.또 백성들에게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성전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서게 하고

11.무리가 왕자를 인도해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으로 삼을새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이르기를 왕이여 만세 수를 누리소서 하니라

 

<설교 요약>

성경은 언약을 알지 못하고서는 해석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약을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 또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언약에서 벗어난 모든 해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 내용으로만 일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의 생각만 드러날 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 중의 하나는 인간은 언약을 이해하고 수용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약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은 평소에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성경을 보면서 자기 지식과 지혜로 언약을 깨닫고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성경에서 언약을 발견하고 그 언약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언약적 해석을 위해서는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필히 은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언약 없이 읽는다면 어떤 내용으로 이해하겠습니까? 아마도 아달랴에게 반기를 든 제사장 여호야다가 레위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을 규합하여 성전 안에 있던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무기로 나누어 주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정치적 사건 정도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찾는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을 중심에 둔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다윗 가문의 씨를 진멸하려 했던 아달랴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거나, ‘다윗 가문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그 후손을 다시 왕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일하심정도로 이해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이 언약의 의미는 없고 인간의 생각만 살아있는 해석입니다.

 

 

본문은 단순히 다윗 가문의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일 왕을 세우는 것이 목적의 전부라면 그 과정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을 성공하는 것이고, 과정은 부차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야다가 사람을 모으고, 성전에 레위 사람을 배치하고, 무기를 나누어주면서 반란을 준비한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왕을 세우는 과정에서 여호야다가 백부장들과 언약을 세웠고(1), 더 나아가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함께 언약을 세웠다(3)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통성이 있는 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서 언약과 함께하는 왕을 세우는 데 초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요아스가 어떻게 왕으로 세워졌는가?’ 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어떻게 언약을 드러내는가?’라는 시각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8절을 보면, 왕을 세우는 날이 안식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는 계명에 비추어본다면 안식일에 왕을 세우는 행위가 과연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아닌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혹은 유다의 왕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므로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려면 반드시 성경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일은 안식일에 행해도 된다라는 식의 원칙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언약의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진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은 단순히 인간을 위한 휴식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계명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삶과 소유가 그들 자신의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 결과라는 것을 안식일 규례를 통해서 드러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사람이 자기 행위를 신뢰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곧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어서 910절을 보면, 여호야다가 왕을 세우는 장소가 하나님의 전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성전에서 왕을 세우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역시 단순한 설명으로는 적절한 답을 내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거룩이 시간의 거룩이라면, 하나님의 전은 장소의 거룩이라는 점에서 이 두 거룩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가를 나타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죄 없는 제물의 피를 받으시고 저주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는 긍휼로 구원하신다는 원칙을 성전의 제사를 통해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은 인간의 행함과 공로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적 일하심만 드러내는 것이 성전의 거룩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노동, 행위에 의한 결과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의 거룩이라는 점에서 날의 거룩과 장소의 거룩이 하나의 관계로 만나는 것입니다.

 

 

거룩은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고 성전이 되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완벽히 이루어져 증거됩니다. 이것이 언약의 완성입니다. 이처럼 여호야다가 다윗 가문의 왕과 언약을 세우는 내용에서 우리는 언약의 완성으로 오셔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역사가 사라지고 대신 예수님이 드러나 증거되는 것이 언약에 의한 성경 해석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덕분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출발 자체가 그들의 힘과 무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규정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하라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지 날을 지켜서 복을 받거나 구원받는 수단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11절에서 무리가 왕자를 인도하여 면류관을 씌운 것입니다. 본래 면류관은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겨우 일곱 살로 어떤 공로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언약의 완성으로 인해 성도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성도는 아무 공로가 없이 십자가에서 언약을 이루신 예수 안에서 면류관이라는 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계 4장의 이십사 장로들처럼 보좌 앞에 자기의 관을 드립니다. 자기 공로가 없이 주의 공로로 얻은 면류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성도가 이 땅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자기 행위를 공로로 주장하고 그것을 권세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기 피로 이루신 언약의 능력을 믿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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