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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강) 반역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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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3:12-15

대하 23:12-15>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31215.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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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아달랴가 백성들이 뛰며 왕을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13.보매 왕이 성전 문 기둥 곁에 섰고 지휘관들과 나팔수들이 왕의 곁에 모셔 서 있으며 그 땅의 모든 백성들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들은 주악하며 찬송을 인도하는지라 이에 아달랴가 그의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4.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을 불러내어 이르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5.이에 무리가 그에게 길을 열어 주고 그가 왕궁 말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였더라

 

<설교 요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상에 없는 특이한 민족으로 택하여 세우신 것처럼, 교회 또한 하나님의 택함과 부르심으로 세상 안에서 구별된 특이한 무리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특이함은 인간 스스로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선택하여 세상 사람보다 특출한 선함을 나타내어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육신에 속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굴복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즉 이러한 본성으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에 이를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6:44)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은 인간의 선택도 결단도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부르신 자들을 세상에 주시고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예수를 믿게 된 성도에게 따로 추가되는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자를 믿게 하심으로 주 안에 있게 된 것이 세상에 없는 하늘의 복으로 충만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이며, 이러한 성도는 자기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을 간다는 것이 교회의 특이함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신을 증거하고 자기를 위한 길을 가기 위해 신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배경으로 생각할 것은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오직 하나님,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믿음과 헌신과 충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과연 그러한지, 아니면 성경에서 폭로되는 하나님께 반역했던 인간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을 뿐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의 언약을 따라 백성들과 군대 백부장들을 규합하여 성전에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며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손뼉을 치며 왕이여 만세수를 누리소서라고 외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아달랴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모든 광경을 목격하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라고 소리칩니다.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그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게 하였고, 여호와의 전에서는 죽이지 말라 하여 왕궁 말문 어귀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유다를 다스리는 정당한 왕으로 여겼던 아달랴의 눈에는 여호와의 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자기 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에서는 이미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서 다윗의 자손 요아스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전에는 이미 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여전히 자기를 왕으로 주장한다면, 여호와의 전 안에 두 왕이 존재하는 결과가 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언약 안에 두 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집에 세우신 왕은 언약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언약의 정신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이 된 아달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반역자입니다.

 

 

그런데 애당초 언약에 관심이 없었던 아달랴는 육년 동안 유다를 다스려온 자기 자리와 권위를 기준으로 왕 됨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는 반역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를 거부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우겠다는 시도로 보고 반역을 외친 것입니다. 이러한 아달랴를 통해서 증거되는 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언약으로 세워진 참된 왕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반역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왕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성전으로 오셨고, 성전이신 예수 안에서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관계로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주체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스스로 주체자가 되어서 나의 자리를 내가 책임지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달랴처럼 예수님의 왕 됨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즉 반역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말하면서도 믿음을 받은 순간부터 믿음을 가진 자로 행세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졌으니 자기 주도적인 열심으로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끝까지 믿음 있는 자로 행세하는 것입니다.

 

 

언약 안에는 죄인이 존재하고, 그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이 언약의 나라이며, 이 언약을 증거하는 것이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저주 가운데 있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거룩한 제물의 피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 제사하는 인간의 공로는 없고, 피로써 용서의 은혜를 입은 죄인된 자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전으로 증거되는 언약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자기의 죄인 됨을 알지 못하고 믿음을 가진 자로 행세하며 자기 공로를 주장한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루신 언약의 혜택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달랴가 성전에서 쫓겨나 왕궁 말문 어귀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문은 왕이 말을 타고 자기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점에서 세상에서의 권위,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 문 어귀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달랴가 내려놓기를 거부하고 반역이라고 외치는 인간의 현실의 헛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언약 안에서 용서의 혜택을 입은 죄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예수를 찾는 우리가 반역자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완성인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실패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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