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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3:16-21

대하 23:16-21>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31621.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6.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17.온 국민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부수고 그의 제단들과 형상들을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18.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의 직원들을 세워 레위 제사장의 수하에 맡기니 이들은 다윗이 전에 그들의 반열을 나누어서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자기들의 정한 규례대로 즐거이 부르고 노래하게 하였던 자들이더라

19.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슨 일에든지 부정한 모든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0.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 윗문으로부터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히매

21.그 땅의 모든 백성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칼로 죽였었더라

 

<설교 요약>

세상은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부터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말씀한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말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11:22)라고 말씀합니다. 직역하면 믿음을 가지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정작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기 확신에 머물러 살아가는 유대인의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는 믿음이 없다는 선언으로 자리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자신하는 무리 가운데 오셔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의 현실을 폭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데도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세상의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고 교정하여 바로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종교 개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벗어난 기존 교회의 잘못된 것을 교정하여 복음의 본질로 되돌리는 의미로서의 개혁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심은 종교 개혁 운동의 출발이 아니라 참된 복음의 도래입니다. 인간에 의한 기존 믿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더 나은 신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믿음으로 확신하며 붙들고 있던 의의 행함과 경건의 신앙아 실상은 인간의 자기 의에 근거한 허상임을 폭로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신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언약이 완성된 나라로 말합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라는 말씀대로 언약의 실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로 성취된 나라입니다. 죄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자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을 누립니다.

 

 

이러한 언약의 나라에 인간의 의는 전혀 요구되지 않습니다. 다만 죄 있는 자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면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의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침투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질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서 바르고 아름다운 신앙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의 개혁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곧 언약이 완성된 나라의 도래를 외면하는 인간의 종교적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여호야다의 행보를 개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온 국민이 바알의 신당을 부수고, 그의 제단과 형상들을 깨뜨리며, 제단 앞에서 제사장 맛단을 죽인 일은 분명 유다 사회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 중심 신앙을 회복하려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깨끗한 신앙을 위한 정화이며, 질서를 회복하는 개혁적 조치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행위 자체를 여호와의 백성 됨의 근거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16)라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유다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규정되는 근거가 종교 개혁적 열심이나 우상 척결의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이 여호와 백성 됨을 규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제사장 여호야다, 일반 백성, 그리고 왕 사이에는 차등이 없습니다. 성전에서 제사하는 자,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자, 백성을 다스리는 자 모두가 동일하게 언약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규정은 직분이나 기능이나 행함에서 나오지 않고 언약적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 된 교회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종교적 열심이 공동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공동체를 규정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 공동체는 자기 피로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고 높일 뿐이기에, 누구든 자기 행함을 의로 자랑한다면 그는 언약에 의해 부정한 자로 간주된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바알 신당은 인간을 위한 신앙 세계입니다. 이러한 신앙에 언약은 필요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신을 섬기는 인간의 열심만 믿음으로 인정됩니다. 바알의 제사장 맛단 역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담긴 용서와 긍휼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복으로 보상된다는 바알 신앙을 가르치는 거짓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당을 부수고 제사장을 죽인 사건은 단순히 우상 숭배라는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겠다는 개혁의 취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헌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9절에서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고 무슨 일에든지 부정한 모든 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도 단순히 성경이 부정하다고 한 자를 막는 질서 유지의 조치로 볼 수 없습니다.

 

 

부정한 자는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제물의 피로 죄가 용서되고 거룩한 여호와의 백성 된다는 것이 성전으로 증거되는 언약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보시기에 부정한 자는 자기의 죄를 생각하지 않고 믿음을 수단화하여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언약의 나라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있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성전으로 오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언약을 이루신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지 교회를 개혁해서 사람들 보기에 바른 교회로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교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우상이 되는 것이며, 현대판 바알 신당 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주의 이름만 자랑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이사이에 언약이 세워져 언약으로 하나 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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