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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4:15-16

대하 24:15-16>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41516.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설교 요약>

여호야다는 백삼십 세에 죽었고, 사람들은 그를 다윗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여호야다가 제사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선을 행한 일이 업적과 공로로 인정되어 제사장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묘실에 장사 되는 영광의 특혜를 입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정당하다면 여호야다 이후에 업적이 있는 다른 제사장도 왕의 묘실에 장사 되는 특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록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선을 행할 능력이나 자질이 없습니다. 모두가 죄의 주관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야다가 선을 행한 것을 인간의 공로로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방 나라에도 왕들의 묘실은 여러 형태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왕권의 영광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일반인의 묘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외형이 아무리 장엄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묘실이 드러내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죄 아래에 있으며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를 두고 생각한다면 어디에 장사 되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왕의 묘실이든 일반인의 묘실이든, 결국 그것은 죄인 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묘실은 죽은 자에게 어떤 유익이나 영광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과시와 영광을 위한 표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여호야다가 왕들의 묘실에 장사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그의 영광이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인간의 시각으로만 보는 결과일 뿐입니다.

 

 

다윗 성은 다윗이 장사 된 곳입니다(왕상 2:10). 따라서 여호야다가 다윗 성의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 영광의 문제가 아니라, 다윗의 묘실 즉 다윗의 죽음에 함께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단순히 죽은 자로만 보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하 21:7절을 보면 다윗의 집 역시 죄인 된 인간의 가문으로서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미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다윗 왕조의 존속이 그들의 의로움이나 신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다의 구원은 그들에게 언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스스로 왕이 되는 과정에서 유다는 다윗 언약과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유다는 더 이상 다윗 왕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언약이 없는 북이스라엘이나 이방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호야다가 언약대로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것은 유다를 언약이 있는 나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한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없는 유다는 북이스라엘이나 이방 나라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게 됩니다. 모두가 죄 아래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이미 동일하지만, 다윗 언약에서 단절된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긍휼의 통로 역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의 제사는 형식만 남은 종교 행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합 시대와 같이 신앙이 우상숭배에 잠식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행위조차 언약적 관계에 근거한 회개와 용서가 아니라, 개인적 이익과 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야다가 언약대로 왕을 세운 일은 단순한 개혁이나 업적이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어둠의 세계에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등불, 즉 성전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에 따라 이루어짐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한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야다가 선을 행했다 해도, 그가 죽어서 묘실에 장사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살아서 행한 일에 주목할 가치가 없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행위 자체가 죽음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에 대해, 비록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의미를 두고 자랑한다고 해도 죽음에서는 생명이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의미를 갖는 것은 여호야다가 다윗의 죽음에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야다가 다윗 성에 장사 된 것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자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을 모르면 믿음은 쉽게 자기 행위에 갇히게 됩니다. 믿음을 자신의 결단이나 실천으로 평가하게 되고, 결국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기 행위가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이 없는 아합 집의 신앙 형태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믿음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에 의해 규정되며,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의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예수님의 죽음에 함께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죄로 인해 죽은 자로써 예수님의 죽음에 함께 하는 성도가 예수님의 부활에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는가에 의미도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죄인 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미 죽은 자로서 예수 안에 장사 된 복된 성도로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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