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4:23-27>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42327.mp4
<본문>
23.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요약>
스가랴 선지자가 요아스에 의해 죽임당할 때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호소합니다. 이후에 요아스가 아람 군대에 의해 심각한 상처를 입고,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한 신하들에 의해 침상에서 죽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이야기는 스가랴 선지자의 억울한 죽음을 대신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원수를 갚으시는 분으로 말합니다(신:32:35, 롬 12:19. 히 10:30).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신다는 생각은 없이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으로만 알고 믿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하나님이 아닌 그저 좋으신 하나님으로만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항상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나(롬 8:7), 악한 행실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원수가 되었다는 그러하며(골 1:21),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상과 벗 된 것이 곧 하나님과 원수 된(약 4:4) 것이라는 증언들 모두가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임을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수 갚으시는 대상은 곧 우리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것이고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도 우리의 현실과 무관한 추상적 내용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수 갚으시는 보응의 대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행위는 명백히 여호와를 버리고 배반한 악행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가랴 선지자의 책망은 단지 죄를 추궁하고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선지자를 보내셨다(대하 24:19)는 말씀대로 여호와를 버림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상태에 놓인 요아스를 살리고자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선지자의 책망을 자신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은혜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없었고,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현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호와를 떠난 자임을 인정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의 왕 된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로만 받아들였던 것이고, 결국 스가랴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신 것이라면, 우리는 매우 중요한 성경적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요아스처럼 반응하는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원수이며, 따라서 원수 갚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근거는 죄를 지적하는 예수님의 말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인간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신앙과 자기 의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에게서도 동일하게 드러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본심을 들여다보면 사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은 사라지고, 나를 위한 나의 뜻이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고, 믿음 없는 악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을 회개로 나아가게 하는 진리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고 만족시키는 듣기 좋은 말로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말씀을 듣고 읽어도 정작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상태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이러한 인간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 뻔합니다. 결국 입술로는 십자가 은혜를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 된 자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을 자신과는 무관한 사건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적이 없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인 적도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은 요아스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인식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기 의를 붙드는 것이고, 그러한 인간성으로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성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요아스와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징벌과 무관하게 사랑과 은혜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것이 말씀을 거부하는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말씀에 해당하는 자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심판받아야 할 진노의 자식이면서 하나님의 원수로 행한 속성이 나온 것일 뿐입니다. 반대로 그 모든 말씀에 내가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하나님의 원수로 받아들이고 징벌이 마땅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원수 된 자를 위하여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덕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는 것은, 본문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징벌까지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징벌을 버리고 사랑과 은혜의 말씀만 받아들이는 것은 말씀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얄팍한 술수일 뿐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보입니다.
우리는 원수 된 나를 징벌하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있을 때, 화목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환경을 조성하시고 나같은 자를 그곳으로 부르셨다는 말씀에서 평안을 갖게 됩니다.
‘징벌받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없기에 나의 행위를 살피고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징벌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나를 위한 다른 조치는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에 머무는 성도의 안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