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3 18:57

(99강) 선지자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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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5:14-16

대하 25:14-16>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51416.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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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설교 요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부르신 이유는, 그들에게 특별한 특권을 부여하여 이방인보다 뛰어난 복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적 무능과 언약적 실패를 드러내는 계시적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할은 아담에 속한 인간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율법의 실천을 통해 의를 이루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백성 됨을 입증하는 행위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참된 순종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실패자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문제는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신 이유를 크게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의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러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믿음의 성취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실패자의 의미를 하나님께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며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 즉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는 다른 길로 빠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실패를 그러한 외형적 변질로 규정하게 되면, 예배 참석과 헌금 등의 종교적 열심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기독교인은 자신을 믿음에 실패한 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실패를 행위의 변질로 규정하게 되면, 본문이 이야기하는 아마샤의 행위, 곧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그것들을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며 분향한 사건을 명백한 배신이자 신앙의 실패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는 외형적으로 드러난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반역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마샤와 다르게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교회 생활에 충실하며 믿음의 열심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은 당연히 실패자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정당하고 바른 상태에 있다고 확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에 부족한 점은 있을지라도 실패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나는 아마샤와 다르다라는 주장대로 과연 그러한지가 의문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이 자기들의 신을 세우고 경배하는 그 행위를 본받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사람들은 자신 있게 로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상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며 무당을 찾아가 인생을 묻는 그런 행위를 우상숭배로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1891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후 그곳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 즉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일, 점술과 길흉 판단, 주술과 무속 행위 등을 결코 본받거나 용납하지 말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이방의 문화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이방인의 종교심이 나타날 수 있는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방의 종교 행위가 결국 자기 삶의 안정과 번영, 곧 자기 목적의 성취, 성공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지라도, 그 믿음이 자기 삶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면,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이방의 미신적 종교성과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마샤가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자기 신으로 세우고 경배한 사건은 그가 이해하는 신적 존재는 자기 목적을 위한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자기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시켜 믿을 것이고, 만일 현재의 누구라도 하나님을 자기를 위한 하나님으로 설정하여 섬긴다면 비록 아마샤와 외형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신을 찾는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아마샤와 구별된다고 말할 수 없음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실패를 회피하며 삶과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자로 남기 위해 힘씁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면서 스스로 실패자가 되기를 구하거나 자신의 실패를 인식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는 일반적인 종교 감각에서는 비정상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 될 것입니다. 누구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평가는 이러한 통념과는 다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참된 신앙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을 무능한 실패자로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오히려 피조물로서의 본래 위치를 회복하는 정상적인 상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정직하다고 하시는 것은 자기 믿음을 근거로 하지 않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자신의 실패를 인식하는 자가 오히려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 안에 있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선지자는 아마샤를 향해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라고 책망합니다. 이 말은 아마샤의 현재 상황에 정확히 부합된다는 점에서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마샤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고, 에돔은 패배자입니다. 그것으로 에돔의 신들은 무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들을 가져와 그것에게 구한다는 것은 자신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즉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승리로 생각하는 것이며, 거기에 더하여 자기를 위한 신을 가져와 구하는 반역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샤의 행위는 오늘의 우리에게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적 성취가 아니라 용서의 능력이 작용하는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성도는 이미 승리자로 존재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은 실패자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성도라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바라보면서 자기 현재를 판단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구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배척하는 실패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상태를 드러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책망에 대해 아마샤는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라고 반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결국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경고를 배척하는 행위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우리도 말씀을 듣지 않고 배척하는 실패자로 드러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여전히 자기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에 있으며, 언약은 개인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개인의 성공 의식과 가치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주의 피로 완성된 의와 거룩이 있게 합니다. 자기의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대신 십자가의 의와 거룩을 알게 된 그들이 실패를 경험한 승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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