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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강) 아마샤의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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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5:17-20

대하 25:17-20>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51720.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7.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설교 요약>

유다 왕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섬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그 일을 책망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 전쟁을 선포하는 행보를 보입니다.

 

 

이처럼 아마샤가 갑자기 요아스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에돔에 대한 승리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군사력과 능력이 강하다는 증거로 전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교만으로 규정합니다. 승리라는 결과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잊고 자기 능력에 의한 것으로 과신하는 것이 교만의 본질입니다.

 

 

아마샤의 전쟁 선포에 대해 요아스는 그의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지적하며 응수합니다. 특히 아마샤를 레바논의 가시나무’, 자신을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하면서, 유다가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전쟁을 한다면 아마샤와 유다가 함께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말을 살펴보면 결국 요아스 또한 자신의 강함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아마샤와 같은 교만을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을 제안한 아마샤나 그에 대한 요아스의 반응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왕이 모두 같은 언약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는 배제한 채 서로를 향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을 때 같은 신앙의 뿌리를 가진 공동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인간적 힘으로 서로를 대응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본래 자리에 대한 인식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그들은 자신을 지킬 아무런 힘도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고아요, 과부요 나그네와 같은 처지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평생을 애굽의 종으로 살았을 백성입니다.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해도 패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애굽을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민족을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인도해 내시고, 강성한 가나안 민족이 차지하고 있던 약속의 땅을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것도 비록 전쟁이라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그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친히 일하심으로써 거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즉 전쟁은 이스라엘의 힘을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 성취되는 도구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권세와 신실함으로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이것이 이스라엘의 본질적 정신으로 자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샤가 에돔을 이긴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 교만해진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본질적 정신과 자세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라는 점에서 아마샤처럼 이스라엘 됨을 망각한 같은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태도를 교만으로 규정하며 경계합니다. 모든 승리의 근원과 존재의 기반이 하나님께 있음을 망각하는 순간, 현재의 성공과 형통은 오히려 교만으로 나아가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며 자기 일을 이루어 달라는 요구를 쉬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 일에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이며 아마샤가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져와 자기를 위해 신으로 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는 수백 개에 이르는 교단이 존재하며, 각 교단은 저마다의 교리를 정립하고 이를 성경적 진리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마샤와 요아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외형적 강성이나 성장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힘과 규모를 신뢰하고 서로 비교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외형적으로는 믿음을 강조하고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서는 인간 중심의 교만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원칙은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의 그 자리, 곧 아무런 힘과 공로를 내세울 수 없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요구됩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무능하고 연약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아래에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바로 그 인식 위에 서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성경이 말하는 겸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낮아진 마음에 하나님의 선택과 자비, 긍휼이 담겨서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중심이 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0절을 보면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라고 말합니다.

 

 

아마샤가 요아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쟁을 하였다가 패배한 후, 반역한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간의 기대나 계산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믿는 자의 복과 형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한 것처럼 교만에 대해서는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십자가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서야 할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직면하게 됩니다. 당장 본문에서 보게 되는 아마샤와 요아스의 교만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현재의 것을 많고 적음, 강함과 약함으로 나누며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성경이 경고하는 교만이며 결국 패망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십자가 앞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을 받아야 할 자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을 자가 아니라 심판이 마땅한 자로 나아갔을 때 대신 진노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이 용서와 사랑으로 다가와 담기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힘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주는 감사와 기쁨으로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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