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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대하 25:21-28

대하 25:21-28>http://onlycross.net/videos/2chr/2chr-252128.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1.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5.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26.아마샤의 이 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7.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설교 요약>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과 이해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높이고 고백하지만, 모든 관심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알기보다는 개인의 유익과 삶의 평안을 보장받는 것으로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자신의 이해와 지식이 성경의 하나님과 같다는 확신으로 신앙생활을 지속하면서 자기의 종교적 확신에 머문 채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없고 인간만 있는, 인간 중심의 신앙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믿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버리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신앙 현실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경배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실상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면서, 우리가 인간의 죄악과 교만에서 스스로 벗어나 하나님을 찾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폭로하여 알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그 의미와 뜻을 바르게 깨닫게 되면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구원된다는 믿음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자기 육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본문입니다.

 

 

아마샤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요아스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요아스가 죽은 이후에도 아마샤가 십오 년 동안 더 생존하였다고 말합니다(25). 아마샤의 패배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유다보다 더 강해서가 아니라, 그가 에돔의 신들을 가져와 섬기고 그 앞에 경배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의 손에 넘기신 사건이었습니다(20). 즉 아마샤의 패배는 분명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 아래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내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이해하고, 반대로 일찍 죽는 것을 징계나 저주의 결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징벌 아래 있는 아마샤가 오히려 요아스보다 십오 년이나 더 생존하였다는 것은 사실 의문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인과 응보적 사고에 갇혀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크게 오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맞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열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배우고자 하는 것은 없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을 만들어 그 신앙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2:12절에 보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신들, 곧 주변 이방 민족의 신들에게 절하고 섬긴 일에 대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버린 행위로 규정합니다. 또한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산당을 세우고 그들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도록 한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났다고 책망하십니다(왕상 11:9).

 

 

그리고 여로보암이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섬긴 일 역시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책망하신(왕상 14:9) 내용들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필요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렸다는 사실 역시, 그가 에돔의 신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며, 그 우상들 앞에서 자기의 소원을 구한 행위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처럼 성경은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것을 우상으로 말하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을 버린 것임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아스가 먼저 죽고 아마샤가 더 오래 생존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샤가 십오 년을 더 생존했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왜 요아스에게 패배하였는지에 대한 내막과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살다가 결국 반역한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결말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아스보다 더 주어진 십오 년의 기간은 여호와를 버린 시간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보게 되면 하나님과 우상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며 살아온 시간이 실상은 하나님을 버린 세월이었음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욕망과 자기 뜻을 우상처럼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폭로합니다.

 

 

반면에 오늘날 교회의 풍조는 이러한 성경의 증언 앞에서 자기 현실을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도외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결과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언약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이방 종교의 형식만 유지하다가 결국 비참한 결말로 끝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몇 년을 더 살고 덜 사는 문제는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평생을 믿었던 하나님이 언약과 관계없는 우상이었으며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온 인생이었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참된 하나님을 만난 성도의 경험입니다.

 

 

성도는 평생을 살면서 버리지 못하는 자기를 위한 하나님과 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하나님을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에서 만난 하나님의 책망을 받으며 자신을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멸망의 존재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구원받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피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의 결과라는 복음을 깨닫고 그 사실만 붙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버린 자에 해당하는 심판의 자리에서 생명이신 주의 피를 의지하는 이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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