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1.12.25 14:02

(13강) 속이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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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5-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04051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5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6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8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10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

 


<설교>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생각으로는 감히 하나님께 그 같은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10절의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는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였다고 불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겉으로는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실제로는 칼이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마치 사기꾼처럼 여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르되’라는 내용을 보면 이 같은 항의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참된 선지자로써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유다를 향해서 평안을 외쳤던 것은 거짓선지자들이며 결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아님을 예레미야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평안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6절의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멸망을 예고하셨고, 4절에서도 여호와께 속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를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합니다.

 

 

3장까지의 내용에서도 유다의 죄와 하나님에 대한 배역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으로 가득할 뿐이지 그 어디에도 평안을 약속하시는 말씀은 없습니다. 2절에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는 말씀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복과 평안을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온 자에 대한 약속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유다의 죄악과 멸망을 전했을 뿐 평강을 전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모든 자를 무작정 평강으로 인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평강을 너무 값싼 것으로 남발했던 것입니다.

 

 

렘 23:17절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리라’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전했고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조차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는 거짓된 말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평강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예레미야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속였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짐작컨대 아마 예레미야는 당시 유다 백성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와 같은 참된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평강을 외치는 거짓된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멸망에 대한 말보다는 평강에 대한 말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다가온 현실은 칼이 생명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이방 나라의 침략으로 인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하나님이 우리를 속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평강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을 뿐,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도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도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평안을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와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당연한 것은 하나님의 분노에 의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거짓선지자들은 유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마땅한 존재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는 것 때문에 무작정 평안과 재앙 없음만을 외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남발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은혜가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넘치게 주시고 사랑을 베푸신다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믿어도 별 수 없다’는 조롱 섞인 말을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하고 하나님을 복 주시는 분으로 말하는데, 평생을 하나님을 믿었고 열심히 기도하고 십일조도 철저히 하는데도 고통을 겪게 될 때 세상으로부터 그 같은 조롱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조롱은 교회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누구시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는 망각한 채 다만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 평강을 누리고 복 받을 사람으로 바라보면서 은혜와 복을 남발한 결과인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내 마음에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멸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하고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내 손에 있는 것을 마치 내 것처럼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힘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가 과연 내 마음에 완악한 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는 평강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마땅한 것은 심판이며 재앙일 뿐입니다. 이러한 심판과 재앙이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면제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는 나를 하나님께서 신자로 인정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마땅한 것이 심판과 재앙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오직 복과 평강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만 생각합니다. 때문에 현대 교회에서도 믿으면 복 받고 믿으면 평안을 얻는다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과 현실이 과연 일치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과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심판과 재앙이 마땅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심판과 재앙을 절감하기에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아니면 안되는 자기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신자에게 복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고 평강 또한 세상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목의 관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복과 평강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현실이 고달프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평강과 복이라는 말로 우리의 죄를 가린 채 헛된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우린 평강을 누릴 자격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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