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1.22 13:18

(16강)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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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5:1-9http://onlycross.net/videos/jer/jer-050109.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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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설교>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법칙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절대 불변의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러한 구원의 도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타 종교를 배격하는 독선으로 치부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종교를 초월하여 구원 받을만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을 만한 사람인데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이치에 맞지 않는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기기에 독선이라며 배척 하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시각으로 보면 선하고 착하고 의롭다고 할 만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종교와 상관없이 천국에 가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도리는 도덕과 윤리가 인정하는 선함을 거부합니다.

 

 

이유는 도덕과 윤리는 인간의 외적인 행동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내적인 면, 즉 본성을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본성적으로 모든 인간은 구원될 수 없는 악인이기에 누구도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선지자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에는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그 성을 멸하실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그 땅에 의인이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방나라인 소돔과 고모라 땅에 의인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모두 믿음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입니다.

 

 

길을 잘못 가고 있다면 돌아서면 됩니다. 하지만 돌아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길을 잘못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 백성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믿음의 길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고 이것은 지금의 교회 현실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신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열심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생활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헌금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사 1:13절에 보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는 말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것을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사하고 제물 바치는 것이 신앙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면 예루살렘은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로 가득하다고 해야 합니다.

 

 

신자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전제한다면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는 자로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전혀 다른 길로 가게 합니다.

 

 

스스로를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로 여긴다면,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 자로 나오게 됩니다.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것도 자랑이 되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 수단이 됩니다. 회개는 사라지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보다는 복을 구할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정의를 행하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 자로 여긴다면 자기 자랑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복을 받을 수도 없는 자임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입니다.

 

 

사람들은 구제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일에 열심이 있는 자신을 보게 되면 누구든 ‘나는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워서 그들을 치시고 경고하심에도 불구하고 아픈 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멸하시는데도 전혀 징계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도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일에 둔해져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전혀 아파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감각이 상실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면 그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께 나온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용서가 더 크고 존귀한 은혜임을 알고 그 은혜를 바라며 그 은혜로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 됨입니다.

 

 

여러분께 신앙은 무엇입니까?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께 신앙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마치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을 향한 바른 신앙의 길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신앙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내 이름의 영광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라 나의 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에 모든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자기 자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한 사람이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온 마음과 뜻을 그 한분에게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의 의 없음을 알고 예수님의 의에만 모든 소망을 두는 것이 의의 길을 가는 것이고 진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의 소원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뜻이 되어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러한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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