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2.12 10:39

(19강) 할례 받지 못한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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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6:1-15http://onlycross.net/videos/jer/jer-0601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5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 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선지자의 말은 항상 비판적인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지자의 말은 유다의 죄를 언급하며 경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비판과 경고는 유다 백성들의 귀에는 설득력 있는 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말 할 때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어떤 표적이 나타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선지자가 말할 때 하늘에서 나팔이 울린다거나 천사가 내려와서 지금 선지자가 하는 말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언을 해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한 것이 전부였을 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는 어떤 표적이 함께 주어졌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쉽게 무시하고 거부하며 배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말씀의 내용은 거부감이 있다고 해도 어쨌든 겉으로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교회에서 외쳐지는 설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누구의 말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입맛대로 교회를 선택하고 설교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고 해서 그 교회가 참되고 그 설교가 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추수 때가 되어야 알곡과 가라지가 명확히 구분될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렘 5:21절에서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그들은 눈이 있고 귀가 있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소경과 귀머거리와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다의 형편을 10절에서 귀가 할례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유다 백성이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가르침을 따르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싫어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했지만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자기 유익이 목적이었고, 따라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불리한 일에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듣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아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은 진리 편에서는 터무니없는 말일 뿐입니다. 사람을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란 사람의 욕망에 부합되는 말이라는 뜻인데, 진리는 결코 사람의 욕망에 부합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말에 솔깃해 합니다. 이것을 선지자는 ‘할례 받지 못한 귀’로 표현합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할례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부인하는 표적입니다. 생식기 끝을 자름으로써 인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같은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은 인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할 참된 할례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육체의 욕망이 부인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로 인정되는 것이고, 마음의 할례가 있는 자가 참된 이스라엘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지금 세상에서 강한 국가로 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국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도 자신들을 힘 있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시는 분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마음의 할례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이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들릴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것을 할례 받지 못한 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귀에 따로 받아야 할 할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없는 자에게는 눈도 귀도 입도 모두가 다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즐겨 듣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욕으로 들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외친 그 말들은 하나같이 유다의 악함과 멸망에 대한 경고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선지자의 말은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온다는 경고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온의 딸을 멸절하신다는 것으로 이어지고, 6절에서는 예루살렘에 오직 포악한 것 밖에 없다고 하면서 샘이 물을 솟구쳐 내는 것처럼 폭력과 탈취와 질병과 살상으로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훈계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싫어하여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어 버리시겠다는 것이 선지자의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이 과연 복된 진리로 들렸겠습니까? 누가 들어도 욕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할례 받은 자라면 이러한 말에서 죄에 붙들리고 사망에 갇힌 자신의 현실에 대해 눈이 뜨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욕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눈을 뜨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소망을 두는 새로운 심령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께 나오게 하는 복되고 참된 진리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할례 받은 귀입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귀에 솔깃한 말보다는 죄를 보게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의 세계로 끌어가는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때 삶의 힘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사는 일에 몰두한다면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며, 결국 내 귀에 솔깃한 말에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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