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2.26 10:45

(20강) 거절

조회 수 414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6:16-21http://onlycross.net/videos/jer/jer-06162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동영상은 없습니다.

 

<본문>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 그러므로 너희 나라들아 들으라 무리들아 그들이 당할 일을 알라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20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장애물을 두리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설교>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개의 길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느 길로 인도하실까요? 당연히 생명의 길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다면 현재의 형편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선한 길로 인도 받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충족되는 길로 인도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로, 또한 사랑과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격상되고 싶은 탐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무엇이 자신에게 선한 것이고 악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인간은 오직 자기의 탐욕을 기준으로 선악을 분별합니다. 또한 탐욕을 탐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탐욕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위해 부르고 찾는 이름이기에 우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멸망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결말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겼던 하나님은 자신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삶은 그들이 원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만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인도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이 가고 싶은 길로만 가고자 했을 뿐입니다.

 

 

1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심령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시며 그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심령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면 참으로 좋고 선한 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것이 심령의 평안을 얻는 길이고, 심령이 평안한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상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심령이 평안한 길로 가지 않겠다며 하나님의 인도를 거절합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할 사람들이 이스라엘이고, 또 심령이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겠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리고 가지 않겠노라’며 거절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에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걸었던 옛적 길을 선한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옛적 길은 출애굽의 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길에서 이스라엘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고통과 괴로움뿐이었던 것입니다. 아마 광야에서 40년간 나그네로 지냈던 고통의 세월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해도 광야에서의 40년 세월이 편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의 인도에 의해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40년의 나그네 세월도 옛 조상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불의함을 덮으시고 약속하신 생명으로 인도해 들이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길이야 말로 가장 선한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탐욕에 갇힌 인간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거절하며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한 길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이스라엘의 결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결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선한 길이고 무엇이 악한 길인가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이 증거하는 이스라엘의 결말을 무시한 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지 않고 거절하면서 내가 원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7절에 보면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고 말합니다. 파수꾼의 나팔 소리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그들을 경고하시며 바른 길로 가기를 촉구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경고의 소리도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선지자에게서 듣고 싶은 것은 경고의 소리가 아니라 그들을 안심시켜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평안하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을 책망하고 경고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뜻도 알지 못한 채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됨은 끊임없이 자기 욕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구를 따라 행하는 그 결말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 두지도 않은 채 오직 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복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불렀을 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선한 길도 그들 마음에 차지 않았고 선한 길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도 책망과 경고의 말이 아닌 복과 평안의 말을 듣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선지자를 통한 경고의 말도 거절한 그들의 결말은 멸망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길은 생명이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시는 길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을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선한 길을 걸어갈 때 심령의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한 길에서는 주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마음을 두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인도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십시오. 심령의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8 예레미야 (1강) 예레미야를 부르심 신윤식 2011.09.11 5253
287 예레미야 (2강) 네가 무엇을 보느냐 신윤식 2011.09.18 4708
286 예레미야 (3강) 여호와의 첫 열매 신윤식 2011.10.16 4844
285 예레미야 (4강) 헛되이 행함 신윤식 2011.10.23 4597
284 예레미야 (5강) 두 가지 악 신윤식 2011.10.30 4836
283 예레미야 (6강) 포로된 이유 신윤식 2011.11.06 4667
282 예레미야 (7강) 귀한 포도나무 신윤식 2011.11.13 4382
281 예레미야 (8강) 누가 구원하실까 신윤식 2011.11.20 4308
280 예레미야 (9강) 돌아오지 아니하고 신윤식 2011.11.27 4422
279 예레미야 (10강) 돌아오라 신윤식 2011.12.04 4283
278 예레미야 (11강) 고치리라 신윤식 2011.12.11 4238
277 예레미야 (12강) 마음 가죽을 베고 신윤식 2011.12.18 4748
276 예레미야 (13강) 속이셨나이다 신윤식 2011.12.25 4367
275 예레미야 (14강) 선지자의 아픔 신윤식 2012.01.01 4253
274 예레미야 (15강) 선지자가 보는 세상 신윤식 2012.01.08 4364
273 예레미야 (16강)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신윤식 2012.01.22 4411
272 예레미야 (17강)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신윤식 2012.01.29 4228
271 예레미야 (18강) 무섭고 놀라운 일 신윤식 2012.02.05 4124
270 예레미야 (19강) 할례 받지 못한 귀 신윤식 2012.02.12 4732
» 예레미야 (20강) 거절 신윤식 2012.02.26 4148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