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3.04 21:24

(21강) 내버린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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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6:22-30http://onlycross.net/videos/jer/jer-06223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23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사랑이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처럼 포효하는 소리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 같이 다 대열을 벌이고 시온의 딸인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

24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그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25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다니지 말라 원수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라

26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임이라

27 내가 이미 너를 내 백성 중에 망대와 요새로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28 그들은 다 심히 반역한 자며 비방하며 돌아다니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29 풀무불을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거되지 아니하나니

30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렸음이라

 


<설교>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구약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은 찬양과 감사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주 읽게 되고, 잠언도 삶에 대한 지혜와 교훈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에 읽게 되지만 레위기나 선지서 등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레미야서도 우리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다의 죄와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은 애당초 우리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구절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그 내용을 내 중심에서 내 멋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신자가 성경에서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성경은 우리를 은혜의 초장으로 인도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내용만을 보면 은혜와는 상관이 없는 듯 여겨집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언급되는 이런 내용에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도 우리를 은혜의 초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사랑이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처럼 포효하는 소리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 같이 다 대열을 벌이고 시온의 딸인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22-23절)는 구절을 보면 잔인하여 사랑이 없고 아주 용맹한 자들이 유다를 치기 위해 올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유다에 대한 이같은 경고는 이미 5:15절에서 언급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경고가 다시 반복된다는 것은 유다의 상황이 더욱 급박해 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경고에 대해 유다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일까요? 속히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정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대항하여 싸울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유다처럼 전혀 대항할 힘이 없는 상태에서는 군사를 모으며 싸울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그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처한 형편을 알고 아파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서 유다가 처할 형편을 내다보며 장차 당할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참된 선지자들뿐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히 귀가 가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편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서 계속 책망하시고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처럼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평안하다’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멸망의 길로만 갔던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렸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유다에게 닥칠 재앙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다를 ‘내버린 은’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런데 은은 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귀금속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은은 은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을 버린다면 그것은 은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겉으로는 은이지만 은으로 사용될 가치가 없기 때문에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은이 은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은 불순물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이처럼 불순물이 가득한 은으로 취급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이같은 자신들의 심각한 상황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 평안한 것으로 만족할 뿐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제사를 지키는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자로 살아가는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의 가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그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복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가려주시는 것으로 하나님 되심이 증거됩니다.

 

 

유다의 가치, 즉 유다의 유다 됨은 이같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감사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긍휼보다는 세상의 힘을 얻고 부를 누리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같은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불순물이 가득한 유다의 상태였습니다.

 

 

여러분, 신자 됨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늘 들어서 아는 내용이라고 쉽게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안다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긍휼과 자비를 안다는 것은 그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서 베푸신 긍휼과 자비로 충만하며 세상 것이 없어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긍휼과 자비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긍휼과 자비보다는 세상을 더 잘 압니다. 그리고 세상을 더 아는 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우리 형편입니다. 이같은 형편을 눈치 챈 신자라면 살아오던 것처럼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긍휼이 없이 사는 자의 나중을 바라보면서 긍휼과 자비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하나님의 사랑에서 긍휼과 자비를 보면서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자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신자라면 이같은 믿음의 삶에 마음이 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 세상 것이 없어도 배부르고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그 세계를 살고 싶은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아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인해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삶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돈으로 가득 채워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하지만 그 나중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중이 분명히 올 것임을 믿으신다면 지금이 아닌 나중에 기뻐할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아마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아는 자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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