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4.08 13:42

(25강) 거짓의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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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8:1-12http://onlycross.net/videos/jer/jer-080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유다의 멸망을 경고합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짓된 것을 고집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우상 섬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행하면서까지 이방 종교를 붙들고 있었고, 그것이 멸망 받을 악한 일임을 증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고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기적을 수 없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뭔가 철저히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서기관의 붓을 거짓의 붓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이 철저히 왜곡된 채 가르쳐지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모두 왜곡되어 거짓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다면 율법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다가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바르게 가르쳐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자신들의 죄의 실상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제사를 지낸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유다는 자신들의 실상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선지자의 말도 듣지를 않습니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말로 치부했고 자기들 고집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대 교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현대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능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내 자신의 악함과 구원 받을 자격이 없음에 대해 깨닫고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현대 교회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유다의 선지자의 붓이 거짓의 붓이 된 것처럼 거짓된 말이 교회를 뒤 덮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성경을 공부하고 수많은 설교가 행해지는 것을 보면 말씀이 풍성한 교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말씀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역시 외적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고 율법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우상만을 좇았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이 있었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율법의 참된 의미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실상을 보지를 못했던 것이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었다고 해도 율법이 없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신자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잘 배워 실천해서 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런 의도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본래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에게 선하고 옳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는 것도 자신에게 선한 방향으로 이루어달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죄의 모습은 말씀을 통해서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이 말씀을 멀리하게 되면 한 가지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컷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면서도 별 문제 없다고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를 다닌다는 정당성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는 것을 정당성으로 확보하게 해 주는 것이 지금의 교회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걸치고 있는 의와 도덕과 신앙의 껍데기를 벗겨 버립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부끄러운 자로 하나님께 나오게 합니다. ‘내가 했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게 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에서는 행함의 경쟁이 없게 되는 것이고, 행함으로 인한 우월감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하는 말씀의 기능은 삭제해 버린 채 오로지 인간을 위해 활용되는 거짓된 말씀이 교회에 넘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의의 경쟁을 하고 세상의 것을 더 확보하게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만 성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 3:6절에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믿어서 복 받고자 하는 것은 탐심일까요 신앙일까요? 복 받겠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탐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은 우상숭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같은 현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모두가 말씀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의 붓만 난무하고 말씀이 사라지고 없는 결과입니다.

 

 

유다는 선지자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의 평안하다는 말을 더 기뻐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었고 그들의 관심 또한 생명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관심을 나도 세상도 아닌 생명이 되신 예수님에게로 붙들어 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생명에 이르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하지만 거짓된 말은 세상을 향한 인간의 탐욕을 더 자극하고 부채질합니다. 하나님을 날 위한 분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목적을 나에게 둔 나를 위한 거짓된 신앙의 길로 가게 합니다. 이러한 거짓과 참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고 참된 신앙의 길로 행한다면 그것이 진심으로 복된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신자는 정직히 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악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말씀 아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합니다.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되는 것만이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길입니다. 말씀을 분별하면서 참된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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