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7.29 16:35

(39강) 거짓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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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13-18http://onlycross.net/videos/jer/jer-14131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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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3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읍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두루 다니도다

 

<설교>

지자에게는 개인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만약 개인의 입장이 허용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선지자의 개인 입장에 따라 가감되고 변개될 것입니다.

 

 

선지자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삭제하고, 백성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신뢰를 받게 할 수 있는 말로 수정되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전하게 됩니다. 때문에 선지자의 길은 자기 입장은 포기한 채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듣는 백성들이 자기 입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말씀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참되고 거짓된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것이고, 거짓선지자는 외면 받고 참된 선지자가 환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백성들이 항상 자기 입장을 생각하며 자기를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에 대해서는 천저하게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들고 백성을 찾아가야 하는 선지자의 길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12절에 보면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선지자가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백성들 앞에 서야 할 선지자의 입장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에 13절을 보면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고 말합니다.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 질 수 있는 말을 삭제하니 하나님이 유다 백성의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멸하신다고 하셨는데 칼을 보지 않고 기근도 이르지 않으며 자신들이 확실한 평강을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의 말과 참된 선지자의 말이 확연하게 다름에도 백성들은 말이 다르다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어떤 말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귀에 거슬린 가에만 반응을 할 뿐입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거짓 선지자의 말이 진리처럼 들립니다. 마치 교회 부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로 여기는 것처럼,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은혜 받은 것이고 그것을 참된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와 목적으로 선지자를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은 하나님이 명령하거나 이르지 않은 말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 기쁨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쁨이 아니라 참된 진리를 깨닫게 됨으로 나타나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감정적으로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에 치중할 뿐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한다면 자신의 감정에 속는 일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 예언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거짓 예언은 인간의 죄에 대해 묵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단 백성들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별 문제 없는 신자로 인정을 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죄를 다룰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백성들 또한 자신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말을 귀에 거슬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 백성을 죄있는 자로 간주하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심판이 경고되는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를 통해서 자신들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하고 깨달으며 죄 있는 자로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것이 말씀의 의도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문제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들이 마치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를 드러내는 말씀에 대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뭔가 귀에 거슬리고 불편하게 다가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에게 죄인이라고 하고 죄 있는 자의 죄를 드러내는 말씀에 불편해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곧 여러분 속에 깊이 감추어졌던 악한 죄성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의를 추구하고 의 있는 자로 나서고 싶은 속성이 죄에 대한 말을 불편해 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고 말합니다.

 

 

거짓 예언은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드러나게 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거짓 예언을 받은 백성들은 자신의 죄와 문제를 알지 못한 채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길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자들이고, 따라서 기근과 칼로 인한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거짓 예언을 받은 것이 죄가 되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짓 예언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신들의 죄의 실상을 보지 못한 것이 그들을 심판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참된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로 나오게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역사입니다. 이 같은 말씀을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것은 자기 기분대로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거짓 예언이 가득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을 위한 말들이 진리로 위장한 채 신자를 미혹합니다. 하지만 진리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며 십자가의 용서의 은혜를 바라보는 신자 되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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