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8.05 16:37

(40강) 주의 이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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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19-22http://onlycross.net/videos/jer/jer-14192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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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설교>

 

신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믿음의 내용이 과연 무엇입니까? 대개 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를 복주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음의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그의 믿음은 수시로 요동하고 변덕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복과 형통으로 인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두고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묻기도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감사와 찬송과 기쁨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19절을 보면 선지자는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라고 한탄합니다.

 

 

이 같은 선지자의 한탄은 어쩌면 우리들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원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괴로움만 더해질 때 신자라면 이러한 마음으로 한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고 나를 치시며 치료해주지 않으신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한탄은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20절에서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는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료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유다를 치시는 것을 부당한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에 대한 당연한 조치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유다를 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당연한 조치라면 군소리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은데, 왜 선지자는 19절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21절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주의 이름, 주의 영광, 주의 언약과 연관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부름 받고 세워진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멸망은 곧 주의 이름과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원의 근거를 주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에 두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을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께 범죄한 죄인이어서 버림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주를 위해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편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내용은 우리의 신앙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신앙의 내용으로 두게 되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 자랑의 기회로 삼는 것이 왜 악한 것에 해당되는 것인지 그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내편으로 끌어 들이고 붙들어 놓기 위해서 온 힘과 성의를 다해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무너지면서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열심과 정성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의 내막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것 하나는 분명한 신앙의 내용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과는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신에게는 그 어떤 근거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던 어떤 잘한 일이 있든 그 일들이 근거가 되어서 우리에게 복이 주어지거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안다면 왜 신앙의 세계가 자기 자랑과 자기 의가 없는 세계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앙과 종교의 다른 점도 이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모든 근거를 두고 신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신에게 자신이 행한 업적들을 내어 놓으며 그에 합당한 보상을 원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애초부터 신과 자기 업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압니다.

 

 

 오로지 주께서 주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을 위해 자신을 붙드시고 이끌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향한 신앙은 그로 하여금 주를 위해 살도록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공로로 삼지 않을 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내가 어떻게 복을 받았는가?’ 여기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물론 자신에게는 그 어떤 근거도 없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면 좋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자신이 행한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증이라는 명목으로 드러내게 되고, 결국 ‘나 이런 사람이다’라며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한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지자의 고백처럼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존재일 뿐이며 따라서 멸망의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는 반문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살려 놓고 있는 것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이름이 증거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삶의 근거를 예수께 두고 감사하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여기며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잘살든 못살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즉 축복은 잘살고 못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함께 하심의 여부로 분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를 앙망하게 되는 것이고 주 밖에는 신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구원의 근거로 삼지 않으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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