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8.12 12:54

(41강) 유다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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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1-9http://onlycross.net/videos/jer/jer-1501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7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8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

9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유다의 신앙 상태는 한마디로 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선지자가 경고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유다는 자신들의 위기 상황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 신앙의 위기인가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자신들의 심각함에 대해 눈치를 채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의 말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고 말합니다.

 

 

출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하셨을 때 모세가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노를 돌이키신 일이 있습니다.

 

 

 또 민 14장에는 가나안 정탐꾼 열 두 사람 가운데 열 사람이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이스라엘을 역시 하나님이 멸망시키려고 하셨을 때 모세가 백성을 위해 간구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하신 일이 있습니다. 사무엘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을 곤경에서 건져 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섰다고 해도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고자 하는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14:11절의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말과도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유다를 향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를 떠난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단호한 말씀이 1절의 내용입니다.

 

 

때문에 이 말씀대로 하자면 유다는 큰 신앙적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심판이 예고되어 있고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자신들의 위기를 깨닫고 회개하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셔서 계속 말씀을 전파하시고 죄를 책망하시면서 권고하셨지만 유다는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를 배척합니다.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로 나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하니까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말이 듣기 싫은 것은 자기 자존심이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나는 문제없다’는 것 자체가 거짓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문제 있음을 안다면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길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기 이름과 영광에 마음을 둔다면 죄인이라는 고백이 곧 형식이고 위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될 뿐입니다.

 

 

2절에 보면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고 말합니다.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죽을 자고, 칼을 받을 자고, 기근을 당할 자며, 포로 될 자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아닌 다른 모든 길은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칼과 기근과 포로 됨으로 나아가는 길일뿐입니다. 즉 우리의 본질에 따른 운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에는 하나님의 벌만 가득할 뿐입니다. 3절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라는 말로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유다에게 넘치는 것은 하나님의 벌이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일 뿐 다른 것은 그 무엇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신앙 행위도 포함됩니다.

 

 

 나의 어떤 신앙 행위도 바라보지 않고 잘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행하심에 구원과 복의 근거를 두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았다는 고백이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한다고 해도 그것이 길이 아니며 의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에게서 그 같은 행함이 맺어지게 했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이 살아있다면 자기 행함을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야 말로 신앙에서 벗어난 것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4절에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고 말합니다.

 

 

므낫세가 행한 것은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한 자기 아들을 이방신의 제물로 바치고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습니다. 우상 섬기는 일에 푹 빠져버렸던 것입니다.

 

 

므낫세의 이런 행보가 말해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신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생명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벌로 가득한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때는 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악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 같은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었다는 것 때문에 흙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보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이 같은 위기를 깨달으며 온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향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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