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8.19 13:05

(42강) 하나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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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10-21http://onlycross.net/videos/jer/jer-15102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설교>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이 현대 기독교에서 거의 상식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삶은 이러한 상식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만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신앙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기에 자신의 신앙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복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이 있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혼란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의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평소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서 살았다고 자부할만한 사람이라면 어려움에 처한 자기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자기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예레미야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온 세계에서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은 것을 두고 재앙이라며 자신을 왜 그런 사람으로 낳았는지에 대해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러한 원망이 하나님 편에 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했던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는 예레미야는 참된 선지자로써 철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는 일에만 모든 관심을 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자신의 출생을 두고 재앙이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유다에게 닥칠 재앙에 대해 가감 없이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라는 말을 보면 아마 선지자를 만나는 사람마다 욕을 하고 저주하며 싸우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선지자가 생각할 때 그 같은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자신에게 있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 도다’라는 말을 보면 예레미야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만한 빌미를 제공한 적이 없음을 얘기합니다.

 

 

세상에 선지자를 왜 이렇게 대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선지자가 전했던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내용을 보면 유다가 당할 재앙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단지 심판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당할 철저한 멸망과 비참한 상황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고의 말에 유다 백성이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처럼 선지자를 모든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는 상황으로 밀어 붙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머니가 그런 사람으로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하나님께서 그러한 길을 갈 사람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지자로 하여금 고난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이 어둠에 처해 있으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해 무지한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저주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이미 어떤 현실이 자신이 덮쳐 올 것인가를 예견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의 세상의 반응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백성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이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 중심에는 말씀을 전하는 내가 살아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주께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자신이 부각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설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자기 능력이 증명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심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는데도 오히려 욕과 저주의 상황이 주어질 때 혼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다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선지자를 강하게 하고 복을 받게 하며 원수로 하여금 재앙과 환난의 때에 선지자에게 간구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선지자가 겪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선지자를 향한 비방도 멈추고 오히려 선지자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11절 다음에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13,14절을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까지 유다의 환난에 집어넣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13절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역시 죄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 때문에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신앙생활을 잘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으로도 죄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철거하고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죄의 울타리 안에서 심판을 받을 자라는 선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레미야는 억울하지 않습니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행함과 선에 가치를 둔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의 복은, 자신이 증거하는 말씀으로 스스로를 경고하고 경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의 복이고 구원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라고 말하고 주의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신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말씀을 얻어먹는 것이고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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