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9.16 16:29

(45강) 유다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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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7:1-11http://onlycross.net/videos/jer/jer-1701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2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3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설교>

 

인간에겐 소유욕이 있습니다. 이 소유욕은 아마 세상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강한 소유욕을 가진 것이 인간인데 원하는 것을 뜻대로 소유할 수 없을 때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자신의 소유욕을 채워줄 수 있는 신을 찾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가 이방인의 신을 끌어 들인 이유입니다. 1절에서 말하는 유다의 죄가 바로 그것을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유다의 죄에 대해 한두 번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1장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까지 계속 강조하시고 경고하셨던 말씀의 그 중심이 우상 문제였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우상을 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이 같은 유다의 태도는 우리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만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고 버리면 되는데 왜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우상을 버리는 문제는 지금의 우리가 불상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여러분께 불상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신자로써 불상을 집에 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상을 집에 두니 병이 낫고 하는 일이 잘 되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래도 불상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기는 싫지만 그래도 복을 가져다주는 불상을 선뜻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껴안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신의 힘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며 이방나라와 같은 부를 얻고 싶어 했습니다. 앞서 말한 소유욕입니다. 그래서 이방 신을 자신들도 껴안고 있으면 그들과 같은 부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상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향한 소유욕이 얼마나 강한지 1절에 보면 유다의 죄가 금강석 철필로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 졌다고 말합니다. 금강석 철필은 아주 강하고 단단한 철필을 뜻합니다. 그러한 철필로 죄가 새겨졌다면 그 죄는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유다의 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하고 이방 신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2절에서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유다는 자신들의 도무지 지워질 수 없는 깊은 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다만 복을 위해서 아세라를 섬기는 일만 생각합니다. 신을 열심히 섬겨서 복 받는 일에만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애당초 하나님의 약속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왜 자신들을 백성으로 부르셨는지, 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마음은 오로지 신을 잘 섬겨서 복을 받는 일에만 향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 교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에 대해 말합니다. 이유는 나의 죄를 알아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은혜에 마음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복에만 마음을 둡니다. 교회를 나오면서도 말씀을 통해서 죄를 보게 되고 주의 은혜를 깊이 알아가는 것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나오거나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서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버림을 받는 믿음의 길에 대해서는 아예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영광을 위해 존재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을 자입니다.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이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자신의 뜻을 위해서만 살고자 하는 완악한 인간이 어떻게 복을 받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면 하나님께 복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신자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구할 자격이 있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건짐 받은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에 대한 소유욕으로 가득한 우리를 저주의 사람으로 그냥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덮으시고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신자가 진심으로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세상만을 바라보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신자의 기도에 기뻐하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핑계 대며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가치한 것으로 짓밟는 것일 뿐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은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올 수 없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에 들어왔고 기업으로 받았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유다는 자신들의 생존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서 유다 백성다운 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방인을 바라보며 ‘저들처럼 살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세라를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 손에 있다고 해서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도 결국에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내 것 삼기 위해 신을 찾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11절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신다면 내 소유를 늘리기 위해 복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에게 있어야 할 것은 나를 구원하신 주의 은혜에만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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