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09.30 09:50

(47강) 안식일을 거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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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7:19-27http://onlycross.net/videos/jer/jer-17192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9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23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설교>

 

인간이 자기를 위해 살 때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이 말씀이 무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나타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자기를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 자기를 위한 삶에 마음을 두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과 뒤에 감춰져 버리고 인간의 눈에는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만 보인 것입니다. 유다 백성도 다르지 않았는데 유다가 자기를 위해 살아감으로써 나타난 현상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규례인 안식일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의 모든 문에 서서 그 문으로 출입하는 유다 왕들과 모든 유다 백성에게 외치라고 말씀합니다.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이 어떤 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왕이 출입하는 문과 백성들이 출입하는 모든 문에 서서 말씀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외쳐야 할 말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21,22절)입니다.

 

 

그런데 23절에 보면 유다 백성이 안식일 규례를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면 유다 왕국이 그대로 유지가 되어서 왕이든 관리든 백성이든 예루살렘 성을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25절). 그리고 26절에서는 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성전에서의 제사가 그대로 보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유다 나라에 평강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고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유다가 멸망한 것을 보면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갑자기 안식일 문제를 거론하시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유다의 죄는 우상숭배였습니다. 우상으로 인해서 유다가 멸망을 당할 것을 계속 경고하셨는데, 왜 갑자기 안식일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지 않음으로 멸망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멸망을 받은 이유가 우상 문제 때문입니까 아니면 안식일 문제 때문입니까? 사실 이 둘은 서로 구분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즉 우상과 안식일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것을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으로 말씀합니다. 짐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왔다면 그 목적은 장사입니다. 결국 돈벌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돈벌이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돈벌이에 부지런하면 생존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보면 자기 생존의 편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칠일 째 쉬셨다는 의미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피곤한 육신을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보전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 정신입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우리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를 책임지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식일을 무시하면서까지 일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생존은 나에게 달렸다는 사고방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일하지 못한 것을 자기 손해로 여기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말씀은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상은 자기를 위해 신을 찾는 것입니다. 나를 내 뜻대로 도와주고 책임져줄 신을 찾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신을 찾음으로 인해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를 위해 안식일 규례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유다가 처한 현실은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는 생존의 문제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생존을 위해 돈벌이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돈벌이가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돈이 있어야 산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즉 돈이 나를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돈이 우리를 책임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돈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생존의 문제에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 스스로의 의지로 우리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돈이 주어지고 주어지지 않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께 달린 문제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돈이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돈을 다 끌어 모아도 돈이 생명의 문제를 책임지지도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돌로 떡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떡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을 생명이 아닌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생존의 문제에 마음을 두고 삽니다. 그로 이해서 생명의 문제를 소홀히 합니다. 생명의 문제가 생존의 문제에 가려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될 것처럼 여기지만 그것이 곧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데 생존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말씀도 생존의 문제와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고,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창고에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복을 주신다는 말을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삶에 힘쓰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존과 연결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말로 바꿔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입니다.

 

 

생존의 문제는 지극히 한시적입니다. 70,80이면 끝날 문제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는 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연 신자가 어떤 문제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생존의 문제에 마음을 두면 예수님의 구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보다는 지금의 내 문제만 크게 부각될 뿐입니다. 신자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그리고 생명의 문제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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