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10.07 16:17

(48강) 토기장이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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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8:1-12http://onlycross.net/videos/jer/jer-180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설교>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사람인데, 어떤 그릇으로 만들어지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흙이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용도의 그릇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는 오직 토기장이며 토기장이는 흙에게 의견이나 희망 사항을 물어서 그 뜻을 반영하고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흙은 오로지 만들어지는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책임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덧붙여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한 대로’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한대로 나를 도우시고 책임져주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흙이 원한 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본문의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 관계의 의미를 신자가 잘 이해를 해야 하는데, 사실 지금의 신자들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적인 분이라고는 말하지만 도무지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거나 섬기는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증거가 피조물이면서도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려놓기 보다는 끝까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내 뜻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목표했던 위치에 도달하는 것으로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들이 겉으로는 자신의 뜻대로 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손에 쥐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살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지만 이것이 내 운명의 결정권자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말을 수긍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성은 물론이고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말을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자신의 운명이 보이지 않는 신의 손에 좌우된다면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신의 뜻이 아니면 안되고, 반대로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신의 뜻이라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생명의 문제에 대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를 생명에 속한 하늘 백성이라는 존귀한 자로 만들어 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토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들 때 흙에 따라 그릇의 용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좋은 흙으로는 귀한 그릇을 만들려고 할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흙이 좋지 않다면 귀한 그릇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바라보는 유다는 좋은 흙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그 같은 자신들의 운명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예레미야가 유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유다를 향해서 선지자는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11절)고 외칩니다.

 

 

유다가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한 유다는 하나님에 의해서 버림받을 존재들일 뿐입니다. 토기장이인 하나님은 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다가도 얼마든지 부숴 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진흙인 유다의 본분입니다. 어떤 그릇이 되고자 하기 전에 그릇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흙이면서도 내가 어떤 흙인가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무작정 좋은 그릇,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존재 의미는 는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7,8절을 보면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라고 말합니다.

 

 

부수거나 멸하려 하는 민족도 악에서 돌이키면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했던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키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9,10절을 보면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그들이 악을 행하면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한번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인간이 하기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하나님을 절대적인 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는데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바뀌는 것이라면 결국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자신의 계획을 위해 살아가는 고집을 버리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자가 하나님의 복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문제는 역시 인간에게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유다가 선지자의 말을 헛된 것으로 간주하고 여전히 자기 마음의 완악한 대로 자기 계획대로 행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악에서 돌이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부서질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지 않다면 우리는 악한 길로만 행하다가 부서지는 운명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항상 완고한 내 고집으로 행하는 우리를 간섭하시고 고쳐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우리의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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