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12.02 13:42

(54강) 패망의 이유

조회 수 388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22:1-12http://onlycross.net/videos/jer/jer-22011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설교>

 

하나님께서 유다왕에게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게 하시는데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3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가 이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지만 준행하지 않으면 유다가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4,5절).

 

 

이제 유다의 운명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결국 하나님이 보내신 바벨론에 의해서 황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패망하게 된 이유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8,9절의 내용을 보면 장차 유다가 파멸했을 때 지나가는 이방인들로부터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는 조롱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 29:24-26절에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 주셨던 경고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것을 보면 유다의 패망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으면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즉 유다가 황폐하게 된다면 이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어야 하는데 왜 언약을 준행하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을 패망의 이유로 말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인, 고아, 과부를 학대하고 압제한 것이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긴 것과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봐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레 18:2-5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전에 약속의 땅에서는 애굽 땅의 풍속이나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애굽이나 가나안 거민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더러워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하여 내친다고 합니다.

 

 

약속의 땅에는 그 땅에 어울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이나 가나안 땅의 기존의 풍속과 규례는 약속의 땅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레위기에서는 근친상간이나 남자가 남자를 사귀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도외시 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죄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풍습이었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그 같은 것을 보고 배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그 같은 이방의 풍속과 규례는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을 품게 되는 것이고 그 땅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만 좋으면 되는 땅이 아니라 그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 어울리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셨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함께 한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거나 압제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드러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방의 풍습은 소유가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은 힘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것이 상대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가 학대당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는 것이 곧 패망의 이유가 되는 것은 유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는 것이 약자에 대한 학대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어긴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을 토하여 내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유는 소유를 더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더 확대시켜줄 신을 찾은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풍습이었는데 유다 역시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서 다른 신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소유에 집착을 하는 것은 소유를 힘으로 여기기 때문이고, 힘없는 약자를 학대하는 것으로 그들의 죄의 습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소유가 힘이 될 수 없습니다. 힘은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거민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 힘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처럼 소유를 힘으로 여기게 된 것이고, 우상을 섬긴 이유가 된 것입니다.

 

 

유다는 세상이 죄로 인해서 패망의 길을 가고 있는 곳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힘으로 여기는 이방나라야 말로 영원히 황폐하게 될 것임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방인이 누리는 부요만 보였고, 그것이 부러웠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도 은혜도 그들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무엇이 그들을 부요하게 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두고 그 길로만 가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패망의 이유인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요를 보기 전에 죄로 가득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소유와 부요를 헛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이 세상에서 나그네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소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은 이미 사망 권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강자에 의해서 약자가 학대 받는 세상의 풍습을 보면서 세상에 예정된 결국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가 주어졌기에 비로소 생명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세상의 소유도 헛된 것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그래서 강자 약자가 없이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기뻐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8 예레미야 (68강) 줄과 멍에를 메고 신윤식 2013.03.10 4127
387 예레미야 (67강) 미가와 우리야 신윤식 2013.03.03 4177
386 예레미야 (66강) 뜻을 돌이키리라 신윤식 2013.02.24 3953
385 예레미야 (65강) 목자를 향한 진노 신윤식 2013.02.17 3884
384 예레미야 (64강) 진노의 술잔 신윤식 2013.02.10 4006
383 예레미야 (63강) 칠십 년 포로생활 신윤식 2013.02.03 4187
382 예레미야 (62강) 무화과 두 광주리 신윤식 2013.01.27 4030
381 예레미야 (61강) 엄중한 말씀 신윤식 2013.01.20 4274
380 예레미야 (60강) 도둑질 하는 선지자 신윤식 2013.01.13 3841
379 예레미야 (59강) 듣지 말아야 할 말 신윤식 2013.01.06 3832
378 예레미야 (58강) 선지자가 선지자에게 신윤식 2012.12.30 3890
377 예레미야 (57강) 정의와 공의의 왕 신윤식 2012.12.23 4143
376 예레미야 (56강) 습관적인 죄 신윤식 2012.12.16 3993
375 예레미야 (55강)여호야김의 잘못 신윤식 2012.12.09 4017
» 예레미야 (54강) 패망의 이유 신윤식 2012.12.02 3881
373 예레미야 (53강) 두 길 신윤식 2012.11.25 4083
372 예레미야 (52강) 하나님의 권유 신윤식 2012.11.11 4270
371 예레미야 (51강) 예레미야와 바스훌 신윤식 2012.11.04 4666
370 예레미야 (50강) 목이 곧은 이스라엘 신윤식 2012.10.21 4191
369 예레미야 (49강) 예레미야를 치자 신윤식 2012.10.14 3790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