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12.16 10:14

(56강) 습관적인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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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20-30http://onlycross.net/videos/jer/jer-22203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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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27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28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설교>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현대 교회의 급선무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경에서 어긋난 길로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면 그는 성경에서 벗어나 있는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현대 교회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내 교회 문제가 아니니까 관심두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현대 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내가 몸담은 교회의 현실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지금의 교회는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목사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개의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목사의 말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추종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한 말이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거의 미신 수준의 잘못된 신앙에 머무른 채 막연하게 옳은 말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을 필사하고, 성경공부가 시행되고, 성경읽기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성경에 대해 열성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미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필요한 구절만을 골라서 이용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고, 사람들을 교회에 붙들어 놓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는 것으로 인한 기쁨에서는 멀어지고 말씀에 대한 영적 관심 또한 무디어 지면서 대신 교회가 시행하는 여러 가지 행사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유다 백성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평안할 때 죄를 지적하시고 경고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려서부터 나타났던 습관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가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교회 현실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영의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육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같은 말씀은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대신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거짓된 말을 선호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짓된 말은 군중들의 종교적 감성을 자극합니다. 죽은 후에 천국을 가고 싶어 하니까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합니다. 세상에 몸담고 있을 때는 성공하고 부자 되고 싶어 하니까 예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복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청종하기를 싫어하는 지금 세상의 습관이며 유다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청종하기를 싫어하는 이 습관에 의해서 유다가 당할 결국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22절에서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고 말합니다. 멸망의 소식 외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청종하지 않게 되면 말씀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유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되면 말씀에 비추어서 세상이 비참한 처지에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동일하게 돈 있으면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돈만 있으면 세상 살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돈만 있으면 세상도 살만합니다. 모든 것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만한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되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에서의 시간이 끝난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재물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비참합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서 인간에게 유일한 희망은 구원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이 같은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해도 구원 밖에 있는 존재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청종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기쁨이 되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에 대해 짜증을 냅니다. 영혼의 구원도 좋고 맞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도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 육신을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분이라면 왜 우리의 삶이 형통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습니까? 잘못 믿어서 입니까? 이것이 성경을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23-25절을 보시면 유다에 대한 멸망을 경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고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며 자신의 죄는 간과한 채 오로지 세상에서의 형통과 복을 추구하면서 우상을 섬겼던 유다의 습관이 결국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영원한 사망이라는 현실에서 세상에서의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평생을 행복감에 젖어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성공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철저하게 무너뜨리시고 죄를 보게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죄를 보게 되고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깨달으며 예수님을 믿는 것에 인생의 의미를 두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마음을 예수님에게로 돌이키게 합니다. 예수님에게로 마음이 돌이킴을 받게 되면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것들은 배설물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은 말씀을 청종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간섭하시며 옛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말씀을 청종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살게 된 것을 복으로 여기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청종하십시오. 말씀으로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아 가시고 말씀의 풍성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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