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12.23 10:25

(57강) 정의와 공의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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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3:1-8http://onlycross.net/videos/jer/jer-2301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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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설교>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을 때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유대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 된 말씀이 평소 인간이 원하는 내용으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실 된 말씀을 거부하는 유대 백성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믿는다고 주장했던 것은 사실 그들의 곡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세상에는 하나님의 진실 된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생각하는 신의 존재는 말씀을 주심으로 스스로를 계시하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유대 백성들조차 말씀에서 벗어난 왜곡된 하나님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과 함께 주신 믿음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말씀은 믿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거부되며 배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면 정의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릴 왕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 날이 이르면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 왜곡된 시각으로 이 약속을 들으면 어떤 하나님을 생각할까요?

 

 

유다는 자신들의 평안과 구원을 위한 왕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왜곡은 실제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들이 고대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유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도 인간의 고대하는 바를 따라 전혀 다르게 왜곡됩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자를 처벌하시고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상을 주심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정의와 공의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으키신 다윗의 한 의로운 가지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는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사실은 세상 누구도 구원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유대 백성들이나 다른 선지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지자가 외쳤던 말은 유다의 멸망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생각할 때 자신들은 멸망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결국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응답해 주실 거야’‘주일을 열심히 지키니까 복을 주실 거야’‘열심히 봉사하니까 어려운 일이 없도록 도와주실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정의, 공의, 공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왜곡된 하나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한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이 정의와 공의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몸을 입고 오시고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건 상관없이 죄인이라는 선언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심판이 마땅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저주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러한 공의가 왜곡됨으로써 인간이 자기 의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에 대가로 복을 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정의며 공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왜곡된 하나님을 외쳤던 것이 거짓 선지자들이고 그들을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평안을 외쳤습니다. 유다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의 의에 두었던 것입니다.

 

 

결국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는 인간의 의를 세우고자 하는지 아니면 무너뜨리고자 하는지에 있습니다. 인간이 거짓 목자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부정하는 십자가의 도는 외면하고 대신 인간을 긍정해주는 왜곡된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긍정하고자 하는 순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무너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긍정하고자 하는 세계에는 필연코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많이 행한 자와 적게 행한 자의 차별이 있습니다. 선함에도 차별이 있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인간의 행함에 따라 차별적으로 분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고대하는 왜곡된 정의며 공의인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의 왕으로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이 죄인의 몸을 입고 오셨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필 죄인의 몸입니까? 이왕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의인으로 오셔서 예수님의 의를 기준해서 상을 주시고 벌을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의인과 악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 때의 일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고 악하다면 하늘의 의를 기준한 상벌의 방식은 인간에게는 절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인간에게서 의를 찾아 상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공평한 위치에서 새롭게 시작하심을 말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공평한 위치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정의와 공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그를 구원하시는 것이 정의며 공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세상의 그 무엇도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 선함, 윤리, 도덕, 열심, 돈 그 무엇을 내놓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는 거부할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입니다.

 

 

참된 말씀은 우리가 꽁꽁 숨겨두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불의와 더러움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내가 저주의 자식이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님께 나오는 그가 정의와 공의로 다스려지는 나라의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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