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2.12.30 10:27

(58강) 선지자가 선지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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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3:9-15http://onlycross.net/videos/jer/jer-230915.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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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9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

10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설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세워서 또 다른 선지자를 책망하십니다. 11절에 보면 당시 유다의 선지자와 제사장을 사악하다 하시고 13절에서는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서도 우매함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에 대해서까지 가차 없이 죄를 고하고 책망하십니다.

 

이처럼 선지자를 세워 선지자를 책망하시는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는 바르고 다른 선지자는 모두 악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참되고 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의 취향을 따라 말씀을 왜곡하여 전했기에 악하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와 다른 선지자를 비교하지 않고 그 모두를 하나님 앞에 세운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를 바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가 바르게 여겨지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행동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행동을 기준으로 하여 참되고 악한 선지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세워서 거짓 선지자의 악을 드러내고 책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예레미야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로서 매우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신이 누군가보다 낫게 여겨지면 그를 가르치고 책망할 자격이 당연히 있는 것처럼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교회에 만연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은연중에 서로를 비교하면서 신앙의 수준에 차별을 두고, 그로 인해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둡니다. 그리고 그를 가르치려 하고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선한 분은 하나님 한분입니다. 따라서 악은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만 규정되어집니다. 즉 사람의 행위를 비교하여 규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이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 규정되어 진다면 하나님의 선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고, 결국 예레미야도 악한 죄인이라는 선언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과연 신앙에 있어서 완벽한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서 고향 사람들에게까지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고통을 겪었을 때는 깊은 외로움과 함께 태어난 것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어쨌든 믿음이 없는 모습이고 따라서 예레미야도 당연히 책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인간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수많은 위협과 배척이 있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을 그대로 선포한 것 때문에 예레미야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레미야를 붙들어 그 길로 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예레미야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유다와 사마리아의 선지자를 누가 책망합니까? 예레미야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는 다만 말씀의 도구가 되어 유다를 책망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책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교회에 굳어져 있는 고질적인 사고방식은 목사는 교인들을 책망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목사는 일반 신자보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의 수준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자를 가르칠 수 있고, 신자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목사도 일반 신자도 똑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오히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자신이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즉 지금의 목사 역시 선지자를 향한 본문의 책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책망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죄를 드러내고 악하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책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이고, 지금의 목사 역시 그 역할을 담당한 사람으로 세워졌을 뿐입니다.

 

즉 목사 역시 말씀의 책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이것을 안다면 먼저 자신부터 말씀에 의해 책망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책망을 받은 그 내용을 가지고 신자들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로서의 자기 본분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든 신자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말씀에 의해 책망을 받은 자로 지체를 대한다면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일은 삼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책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면 누군가의 책망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네가 뭔데’라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입니다. 이것이 유다의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책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고 책망으로 다가온 예레미야를 거부하고 배척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군가를 세워서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책망하시면서 참된 진리의 길로 이끌어 가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닌 말씀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에 초점을 둘 때 사람에 대한 반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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