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1.06 10:16

(59강) 듣지 말아야 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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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3:16-22http://onlycross.net/videos/jer/jer-23162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설교>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의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당시 유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말이 헛된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지자의 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듣지 말아야 할 헛된 말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말씀을 듣는 신자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렘 2:5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고 말합니다. 헛된 말을 따른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헛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무엇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가를 바르게 깨닫고 말씀을 분별하며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헛된 것을 가르치는 선지자의 말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16절 하반절의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말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가르쳐야 할 사람입니다. 따라서 선지자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가르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며 그는 이미 선지자가 아니라 사람을 헛된 길로 이끄는 거짓된 존재일 뿐입니다. 즉 마귀의 하수인일 뿐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헛된 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짓 선지자를 심판해 버리시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그들을 그냥 두고 보시면서 다만 그 말을 듣지 말라고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헛된 말이 있음으로 해서 헛된 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마음을 두는 참된 백성이 구별되고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세상에 헛되고 거짓된 말을 가르치는 자는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과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17절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지금까지 예레미야를 살펴오면서 많이 들었던 내용이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던 예레미야의 말은 죄와 재앙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평안하리라,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은 죄의 문제를 덮어버릴 때 가능한 말입니다. 죄를 덮어 버림으로써 유다는 심판과는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결국 평안의 복을 누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개되어 유다 백성을 헛된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책망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책망은커녕 평안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백성들에게 평안은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여 평안만을 말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함으로써 백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것으로 백성들에게서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말입니다.

 

 

18절을 보면 이들을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며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 스스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제대로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을 22절에서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었다면 유다 백성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한 말을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만 가지고도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과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은 말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죄 가운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기실 우리의 현실은 세상을 좇으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길로만 달려갑니다.

 

 

이러한 우리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도 은혜임을 알고 감사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믿으면 복 받고 형통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행하심은 진노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19절)고 말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한다고(20절)도 말합니다. 이처럼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당연한 것은 진노에 의한 심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진노의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구속의 일에 대해 증거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죄와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잘못은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었기에 당연히 주어진 구원으로 인식하고 관심은 자기에게 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십자가라는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믿으면 복 받는다는 헛된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우리를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즉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사람을 헛된 길로 이끄는 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항상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바르게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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