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2.03 10:31

(63강) 칠십 년 포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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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5:1-14http://onlycross.net/videos/jer/jer-2501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

3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5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6 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7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14 그리하여 여러 민족과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들을 섬기게 할 것이나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설교>

우리는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추궁 받아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신자란 하나님 앞에서 복 달라고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회개하며 불쌍히 여겨주심을 바라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향해서도 선지자를 세워서 죄를 추궁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생활에 열심인 자신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죄를 추궁 받으면서도 자기 죄를 보지 못했고 결국 회개는커녕 선지자에 대한 배척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말씀을 외면하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유다의 모든 땅이 폐허가 되며 그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유다의 악행에 대해 그 땅의 멸망으로 보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왜 그러한 보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4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유다의 악행은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그 말에 귀 기울여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세움 받은 때부터 이십삼 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단 한 번도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삶의 길에서 떠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가는 그 길에 모든 소원과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5절)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유다가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면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신 그 땅에서 살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자기의 길을 고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서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하나님이 조상에게 주신 그 땅에서 살게 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하지만 유다는 단지 사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방 나라처럼 부요를 누리고 강해지는 것이 곧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기독교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는 예수 안으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산다고 해도 단지 사는 것만으로는 믿음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을 좀 더 많이 확보하고 힘 있는 존재로 사는 것에 뜻을 두고 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믿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까지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완악함이고 유다의 악행이기도 합니다.

 

 

만약 유다가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에 뜻을 두었다면 선지자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약속의 땅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땅의 것으로 자신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은 악행임을 깨달으며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 자체 보다는 강하고 힘 있는 존재됨에 뜻을 두었기에 결국 이방의 신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에게 하나님은 칠십년의 포로 생활을 말씀합니다. 유다의 모든 땅이 폐허가 되고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칠십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면 바벨론은 망하고 유다는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칠십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하 36:21절에 보면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고 말합니다. 유다 백성의 칠십 년 포로생활을 유다 땅이 안식년을 누린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땅의 안식에 대한 규례는 레 25: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년 동안 농사를 지었으면 칠년 째에는 농사하지 말고 땅을 쉬게 하라는 것이 땅에 대한 안식년 규례입니다. 이 규례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땅이 안식하는 동안은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생계 자체가 곤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생계 문제에 곤란함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것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칠십년의 포로 생활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고생하기 위한 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누구시며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배우기 위한 은혜의 기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삽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책임지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 지금 살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불만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심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본심 때문에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심을 믿으신다면 지금의 여러분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뜻으로, 은혜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통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본심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늘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시며,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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