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4.28 09:20

(75강) 상처와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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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0:12-24http://onlycross.net/videos/jer/jer-30122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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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15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16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20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21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3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

24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설교>

 

하나님은 유다에게 고칠 수 없는 상처를 주셨고 중한 부상을 입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15절)며 그들에게 주어진 상처와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처럼 상처를 주시고 부르짖는 것 까지 책망하시는 하나님이 유다가 입은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고 고쳐주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유다의 상처가 단지 아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서 유다에게 알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다는 자신들이 입은 상처와 상처가 나음을 통해서 상처를 주시고 또한 낫게 하시는 분의 마음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14절을 보면 유다는 악행이 많고 죄가 허다함으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자신들의 상처에서 자기의 악행과 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주시고 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일에 무지 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고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신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자기를 지키시고 도와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할 뿐이지 고칠 수 없는 상처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자로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악행이 많고 죄가 허다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시고 상처를 낫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 마음에 담아 두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상처를 받는가?’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죄인임을 자복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악행과 죄가 많은 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중한 상처가 주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당연한 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유다에게 상처를 주시고 다시 상처를 낫게 하심으로 그들 마음에 어떤 하나님을 담아두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고침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중한 상처를 주시고 그들의 악행과 죄를 책망합니다. 이것은 상처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가 낫게 됨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유다의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을 담아두고자 하신 것입니다.

 

 

신자의 신자 됨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을 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음은 다른 것이 아닌 긍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세상의 무엇보다 크고 존귀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에게 상처를 주시고 낫게 하시는 일은 유다를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 받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유다와 같은 상처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유다처럼 육신의 삶이 무너지고 고통으로 떠밀리는 일을 실제적으로 겪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식으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힘든 일을 겪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안을 누리기도 합니다. 유다는 나라가 무너지고 육신이 고통을 겪는 상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했지만 오늘 우리는 다릅니다. 왜일까요?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상처의 나음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신 세우셔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을 담아두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이 받으신 상처가 곧 자신의 상처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나음 또한 우리의 나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을 담아두는 하나님의 사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생생하게 보고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에도 땅의 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저울질하려고 하는 것은 십자가보다 땅의 것을 더 크게 여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혹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낫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치유사역이라는 것이 성행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낫게 하는 분으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도 자신들이 입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의 부르짖음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상처를 낫게 하시는 분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시는 것입니다. 상처를 낫게 하는 분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칠 수 없는 상처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악행과 죄가 가득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늘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여러분의 마음에 다가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여러분의 상처로 자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십자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알게 됩니다.

 

 

22절에 보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의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 또한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동일하게 세상의 것으로 감사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다를 고치시고 하나님의 긍휼이 담긴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하신 것이 상처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여러분이 입어야 할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를 보시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상처에서 새 살이 돋게 하시고 낫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이 늘 여러분의 마음에 생생히 역사함으로 긍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길로 행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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